[뉴스토마토 문경미기자] "인간이란 생물이 365일 동안 눈을 뜨고도 살 수가 있구나, 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의 힘이 무섭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6개월짜리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암환자와 비슷한 팔자였던 거죠. 잠이 안 올 수밖에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연구소에서 보장된 미래를 살았던 그는 7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끝으로 창업을 결심한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월급쟁이 생활을 하며 모은 돈 2000만원에 은행 빚 3000만원으로 시작한 창업은 매월 사무실 유지비 500만원에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고,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는 다산네트웍스의 사훈처럼 그는 목표를 정했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매출액 1405억원을 달성한 '중견기업'의 대표로 우뚝 서며 국내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1위 업체로서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포기했던 인터넷 장비 분야에서 탄탄히 자리를 유지해오며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꾸준히 거래해온 그의 신뢰가 이제는 미국 시장에서 시험받게 됐다.
지난 21일 분당의 다산네트웍스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대기업도 포기했던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는데요. 국내 점유율 1위 기업인 다산네트웍스를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 다산네트웍스는 초고속 인터넷 장비업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초고속 인터넷은 '넘버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 배경에 저희 다산같은 회사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가 좋은 인터넷 장비를 개발하고 생산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를 달성한 것이죠.
하지만 불행한 것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 초고속 인터넷의 선진국이 됐는데, 왜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장비 글로벌 업체는 탄생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연구해 볼 만한 대상이지요.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전 세계에서 넘버원 이슈에 올라선다면 유관 업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 경험을 토대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만이 다산같은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해외 시장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국내 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도 전 세계에 펼쳐져 있지만, 일본이나 인도, 미국같이 볼륨이 큰 나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왜 안 들어가냐고들 하는데, 중국은 로컬 업체들이 너무 강해서입니다. 다만 일본과 미국, 인도는 그 나라 업체와도 경쟁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지난 3월 인터뷰 당시 미국 출장을 막 마치고 돌아오셨는데요. 당시에 미국 현지에 대만의 액톤테크놀로지사와 손을 잡고 법인을 설립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현지 법인 설립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 미국에서 브랜드를 갖고 시장을 공략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전략적 파트너사로 대만의 액톤사와 협력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액톤은 이미 미국에서 SMC라는 브랜드로 케이블사업자에게 대량으로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우선 케이블 사업자를 대상으로 SMC와 협력해서 미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우선 다산 이름으로 법인 등록은 마쳤구요. SMC와 계속 협상할 계획입니다. 또 다른 변수가 미 현지에서 영향력이 큰 업체가 우리 회사 제품을 전략적 제휴를 통해 미 시장에 들어갈 확률인데, 또 다른 옵션이기 때문에 저울질 중입니다. 전체 35억원 규모를 투자해서 이번 달 안에 현지 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입니다.
- 다산네트웍스의 매출 비중을 보면 해외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인데요. 전체적인 해외 공략 그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 국내에서 B2B벤처기업이 성장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해외 시장에 어떻게 진출하느냐를 관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본과 미국 시장을 주 타깃으로 하는데. 일본은 현재 순항 중입니다.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려 준비 중이고요. 이번 달에 미국에 법인 설립하고 미국의 파트너사와 같이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건지가 올해 말까지 저희가 해야 할 주된 작업들입니다.
- 미국은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것 같은데요.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으로 성공 가능성,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 미국 FCC가 발표한 초고속 인터넷 전략이 있습니다. 1억 가구에 100Mbps 초고속 인터넷을 공급하겠다는 건데요. 인터넷을 미국이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앞서가는 한국과 일본에 비해 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합니다.
그런 인프라를 미국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선 거죠. 시장에만 맡겨놔선 다른 나라에 뒤처진다고 생각한 거고, 정부가 나서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미 정부 주도로 향후 10년 동안 초고속 인터넷 프로젝트가 크게 형성될 겁니다.
그 수혜는 미국업체들에게 먼저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도 많은 기회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미국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하는 방법도 있고 직접 공략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장은 본격적으로 내년부터 앞으로 10년간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적기라 판단했습니다.
- 실적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2008년 적자였던 다산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실질적인 턴어라운드를 기록했습니다.(2008년 매출액 1280억원, 영업이익 12억원, 2009년 매출액 1405억원, 영업이익 120억원) 올해 추정치를 보면 2000억원 매출액이 예상되던데요. 올해 매출, 얼마나 성장할 것으로 보십니까?
▲ 저희가 지난해는 굉장히 힘든 한 해였는데, 하반기에 열심히 해서 2009년 전체로는 그래도 괜찮은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 기세로 2010년에 1분기도 좋은 실적을 올렸고, 이미 지난해 영업이익을 1분기에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2분기 실적은 1분기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매출은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2분기가 1분기의 절반인데요. 1분기 때 워낙 좋았기 때문에 예년에 비하면 좋은 수준이지만, 줄어든 거죠. 3분기에 가서 다시 1분기만큼 좋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30~40% 정도 신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우선 해외 시장이 매출이 20%정도였는데요. 올해는 전체 매출 대비 해외 비중이 대략 30% 정도는 증가할 거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시장이 늘어나는 게 관건입니다 국내 시장이 작년에 비해 많이 살아난 것도 긍정적 요인입니다.
- 최근 벤처기업협회가 펴낸 '찬스'라는 책을 보니 인터뷰를 하셨던데, 창업 첫해,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힘드셨다고 말했습니다. 매 고비 힘든 시기마다 지금을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생각해보면 창업 후 첫해가 굉장히 위험하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일단 거기서 살아남으니까 97년 IMF사태 때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됐는데요. 그러나 심각한 위기가 왔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도 하고 새로운 사업도 할 수 있었어요. 코페루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아무리 안전하게 사업을 잘 한다고 해도 어차피 이런 사태가 오면 리스크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리스크없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매니지먼트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자 그게 기업가 정신이 아니겠는가 뭐 이런 생각입니다. 모험을 시작한 게 97년 이후고요. 그러면서 사업 확장하고 벤처 캐피털 투자도 받았습니다.
이후 2000년 코스닥에 진출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2001년부터 IT붐이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과 2003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 코스닥에서 확보한 게 없었다면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저희도 그런 운명이었을지 모릅니다. 2003년부터 좋아지기 시작했고요. 시장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다음해 지멘스에서 러브콜이 왔고 1억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2004년 5월에 지멘스의 자금을 유치해서 저는 2대 주주로 내려앉고, 그때 당시 주당 9000원 정도 투자 유치했으니 잘했죠. 그리고 회사가 좋아졌습니다. 2005년, 2006년 승승장구했고요. 2007년에 양적 성장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났습니다. 대기업의 후려치기에 된통 걸린 셈입니다. 당시 삼성이 통신사업에 들어왔다 다시 철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산네트웍스는 생존에 성공했기 때문에 넘버원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에 흑자로 돌아섰고, 2009년에 턴어라운드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시장 파이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플레이어들이 투자를 줄였고, 급기야 지멘스도 통신장비 사업을 포기하고 노키아에 넘겼습니다. 그게 2007년에 노키아지멘스가 합작회사로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2008년, 지멘스가 다시 저에게 주당 6000원에 팔아서 제가 인수하게 된겁니다. 그게 2008년 8월이었습니다.
- 다산네트웍스의 성장과정, 남 대표님의 사업 이야기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것 같은데요. 그 사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집에서는 이미 잊혀진 존재입니다. 가정사를 챙길 여유도 없었고요.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 나아진 것이죠. IMF 때도 죽다 살았습니다. 큰 위기가 사업의 기회로 전환된 것이죠. 실제 달성했고. 그 이후 잠깐 반짝 좋았다가 2001년부터 다시 힘들어졌습니다. 한국적 중소기업, 벤처기업 환경에서 수익성 올릴 수 없는 환경에 던저져 고민했습니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곪아가던 시기입니다.
그때 많은 벤처가 무너지고 스캔들 생기고 사건 사고 많았어요. 우리가 살아남은건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어떻게 해결할까 솔직하고 투명하게 직원들과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기업들은 포장하고 분식하고 속이고 거짓말하고....이런 기업들은 쌓이는 부실을 어쩌지 못해 고꾸라졌습니다.
시장에 정면으로 부딪혀 나가다보니 2004년부터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했고요. 그 상황에서 지멘스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거죠. 빅딜 성사시켜 그 자금과 협력 관계로 다산이 살아난 겁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또 죽다 살아났으니, 다산과 저는 결국 네 번을 죽다 살았난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의 유일한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분야의 1위 기업이 됐고, 이제 미국 시장에서 다시 한번 시험판을 마련하게 된 셈입니다.
진행=문경미 기자, 정리=윤영혜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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