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 <강남1970>은 서울의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가 배경이다. 주인공인 이민호와 김래원은 건달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투는 건 권력에 대한 줄대기나 여자, 유흥업소 운영권 등이 아니다. 영화는 강남 땅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두고 폭력과 유혈, 배신 등으로 얼룩진 강남공화국 개발사를 그렸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당시 사람들이 지금의 강남 일대를 '강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영동'이라고 칭했다 영화는 논밭만 있던 서울의 귀퉁이가 대한민국 중심부가 된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강남 땅을 매매한 방식이다. 주인공들은 세상물정 어두운 강남 원주민으로부터 헐값에 땅을 산 뒤 자기들끼리 땅을 사고팔며 땅값을 천정부지로 높여갔다. 주인공들의 직업을 건달로 설정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동산은 일하지 않고 땅을 가진 것만으로도 소득을 창출해서다. 이른바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을 매매해 얻은 이익과 임대료, 각종 이자수익 등이다. 주인공들이 자기 조직끼리 땅을 사고팔며 땅값을 높여 차익을 남긴 것도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2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년도 국내 부동산 불로소득은 총 352조9000억원이나 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8.4%에 달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2009년 194조원을 기록한 이래 매년 상승했고, 10년 만에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 불로소득은 소수에게 집중된 것으로 나타난다.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개인 토지의 경우 10분위 소유세대가 전체 토지 면적의 77.2%를 차지했다. 법인소유 토지는 집중도가 더욱 심한데, 10분위 법인(재벌·대기업)의 면적 점유율은 전체의 92.5%였다.
물론 GDP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불로소득이 많다고 해서 부동산을 자산으로 가진 사람과 자산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무조건 비판할 순 없다. 다만 소수에게 사회적 부가 쏠린 건 문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국토보유세 신설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배경도 이 지점이다. 모든 토지에 적용하는 토지세를 신설한 뒤 이를 통해 거둔 세금을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국토보유세는 부동산 소유자로 하여금 세금을 납부토록 함으로써 지대소득을 줄일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자본이득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영화에서 강남 땅 투기에 나선 건 이민호와 김래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국회의원, 조직폭력배, 심지어 강남 개발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미리 알던 서울시 간부들까지 땅 투기에 뛰어들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일까. 지금 실제로 국회의원과 공무원 등이 신도시 지역에 대규모 투기를 한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줬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나듯 '땀보다 땅이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망국적 부동산투기 열풍은 근절할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 모두 비상한 시기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비상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최병호 사회부 기자(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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