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하고 허랑한 주장들을 우리는 ‘괴담’이라고 말한다. 오금을 저리게 한 도심괴담 중 반인반묘의 홍콩할매귀신은 30여년 전 한 시대를 주름잡은 역대급 괴담으로 통한다. 1989년 한 방송사까지 ‘홍콩할매귀신’ 소동을 보도할 정도로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홍콩할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 팁을 서로 이설하기 시작했다. 손톱·발톱을 숨겼고, 말끝 마다 ‘홍콩’이라는 단어가 붙였다. 당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홍콩할매는 나름의 생존 주술과 ‘영구와 땡칠이 4탄 홍콩할매귀신’ 영화를 통해 해학적으로 풍자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00원짜리 동전 속 이순신 장군의 수염을 거꾸로 보면 사람 머리처럼 보인다’며 설파된 김민지 괴담은 한국조폐공사가 직접 유언비어라는 공식 해명까지 할 정도였다. 유괴로 토막 살해당한 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조폐공사 사장이 발행 화폐에 딸의 흔적을 남겼다는 괴소문은 국가대표급 괴담이었다.
지인끼리 모일 때면 10원짜리 동전 속 다보탑에 ‘김’ 씨 성을 찾았고, 묶인 소녀의 팔이라며 500원짜리 속 학 다리를 연신 설명하던 기억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날로 불길한 날이 된 ‘13일의 금요일’ 따위의 미신은 사실상 해당 괴담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옛 괴담들은 유괴, 토막살인 등 비운 했던 시대적 배경상을 내포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괴담은 의혹과 추정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무한 정보 시대에 빠져들고 있다.
스스로가 여론 선동용 프레임 짜기를 의심하고 이를 거를 수 있는 지성적 필터링을 가동해도 ‘빨간 휴지줄까. 파란휴지줄까’에 맥을 놓아버린 쌍팔년도 초딩의 마음과 같다.
바로 접종을 앞둔 코로나19 백신 괴담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요즘 괴담은 소위 전문가라고 표방하는 이들의 의학적 지식과 결부돼 빠르게 사실처럼 설파되고 있다. 최근 한의사라고 밝힌 한 유튜버의 고추대 치료 효능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까지 오를 정도로 관심도가 높았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전형적인 공포마케팅인 ‘거짓정보’라고 입장을 전했으나 노인층을 중심으로 일파만파였다. 뿐만 아니다. 유전자 변형설부터 신체 조정 음모론 등 백신 접종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물론 합리적 의심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허위·조작 정보로 인해 생명과 안전, 재산에 위협이 된다면 얘기는 다르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돈 벌이에 나서는 괴담 전파자에 대해서는 마땅한 조치가 필요하고 본다.
해리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교수의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저서가 있다. ‘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한가’라는 철학적 분석을 담고 있다. 참과 거짓의 논리를 부정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우린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 접종인 ‘웨이크필드 사건’ 이후 23년 만에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두고 있다. 웨이크필드 건은 집단지성이 갖춰지지 않는 양극화 시대에 한 전문가의 악행이 왜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한 사건이었다.
경영철학에서도 ‘한명의 천재가 10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식 방식을 폐기한 지 이미 오래다. 개인보단 집단지성의 힘이 코로나 시대에 생존이 되고 있다. 가짜뉴스 시대에 협업지성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온갖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국민적 집단지성을 위한 정부의 정보 제공 능력은 백신 접종을 앞두고 더욱 고삐를 죄야 할 것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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