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간판 갈이' 장사의 한계
2020-11-10 06:00:00 2020-11-10 06:00:00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 한 동네에 오랜 시간 거주했다. 그 동네에는 단독주택 1층에 위치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식당은 7~8년 정도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1년에 서너 번씩 상호와 메뉴를 바꿨다.
 
주먹고기를 팔다가 국숫집이 되기도 했고 김밥집이 됐다가 소고깃집으로 변하기도 했다. 중화요리를 빼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석 달이 멀다 하고 내부 공사를 다시 하고 새 가게를 여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의문에 대해 요식업에 종사하는 지인은 소위 '개업 빨'을 노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파리 날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메뉴와 식당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초반 2~3개월 손님이 몰리는 효과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얘기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만족보다 실망한 경험이 많으면서도 상호가 바뀔 때마다 거의 한 번씩은 들렀던 기억이 났다.
 
어느 날 식당은 사라졌고 몇 년 후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새로운 동네에도 비슷한 가게가 있었다. 처음에는 곰탕을 팔았는데 한 달 뒤에 순댓국 다시 두 달 후에 한우집이 됐다.
 
최고 품질의 한우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문구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섰다. 기대와 달리 신선도가 떨어지는 음식과 식탁 밑에 쌓인 먼지, 어수선한 응대 등으로 불만이 쌓였을 때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예전 동네에 있던 식당 사장님이다.
 
이후 간판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더 이상 찾지 않았다. 현재 그 식당 자리는 '임대'란 글자가 크게 적힌 종이가 붙은 채 1년 넘게 텅 비어있다.
 
그 식당 사장님은 더 좋은 상권에서 규모를 키운 가게를 운영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을 듯하다.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노력을 했지만 성공보다 실패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유는 엉뚱한 수고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손님은 음식의 맛과 질, 서비스가 좋아지길 바라는 데 여기에 무관심했다. 대신 당장 매출을 올릴만한 메뉴를 찾기에 바빴다. 음식과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고 노력을 했다면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변신을 시도할 리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사람의 얼굴이 간판보다 더 자주 바뀌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간판 갈이로 새로운 가게처럼 꾸며 손님을 끌어도 믿고 찾아오는 단골이 드물다 보니 지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초반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반복되는 만큼 숫자는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이미 그 가게의 수준을 알면서 매번 속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많지 않다.
 
손님의 바람을 외면하고 본인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으니 문제를 제대로 알 수 없었고 해결책이 얕은 눈속임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마 간판을 바꾸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을 자기반성과 손님의 반응을 살피는 데 썼다면 '대박집'이 돼 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
 
정치권을 바라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선거에서 지고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나 반성은 보이지 않는 대신 잊을만하면 당명을 바꾸고 신당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정치는 대한민국이란 하나의 상권뿐이라 마땅히 갈 곳도 없을 텐데.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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