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상호관세 대상에서 빠졌던 멕시코에도 오는 8월1일부터 3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국내 산업계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멕시코는 삼성전자·LG전자와 같은 가전부터 기아·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포스코·현대제철 같은 철강까지 국내 다수 기업들이 북미 시장 주력 수출기지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다만 추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준수한 제품에도 관세가 부과될 것인지 여부가 불투명한 탓에 업계는 미국과 멕시코의 협상 결과를 주시하며 대응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멕시코에 다음달 1일부터 3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멕시코는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대상에서 빠진 바 있는데, 다시금 고율의 관세가 통보된 것입니다. 멕시코의 관세는 지난 2월 대미 마약 반입에 대한 소극적 대응을 이유로 책정된 25%의 관세에서 5%p 올라갔습니다.
이에 그동안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우회 수출을 진행했던 국내 기업들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멕시코는 북미 3개국 자유무역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따른 무관세 혜택과 저렴한 임금, 그리고 지리적으로 미국과 인접해 물류비가 적게 드는 등 이점으로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북미 시장 핵심 수출기지로 사용됐습니다.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 기아, 현대모비스, 포스코 등 가전과 자동차·철강업체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하지만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이 같은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게 됩니다.
먼저 가전업계를 보면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 지역에서, LG전자는 몬테레이, 레이노사 지역에서 각각 TV와 냉장고 등 주요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들 제품 중 상당수는 미국으로 수출됩니다. 만일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에서 판매되는 가전 제품의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지기에 현지 시장의 경쟁력 악화 우려도 높습니다.
멕시코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양사는 다각도로 관련 영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USMCA 규정을 준수한 제품에도 적용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해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며 예의주시하는 모습입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만약 다음달 1일 미국이 예정대로 멕시코에 30% 관세를 부과한다면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며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전략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이 끊임없이 변동됐고, 멕시코 정부도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어 상황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LG전자 멕시코 레이노사(Reynosa)에서 생산된 LG 올레드 TV가 출하를 앞두고 있는 모습. (사진=LG전자 제공)
몬테레이 지역에 자동차 공장을 두고 있는 기아도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기아는 몬테레이 공장에서 지난해 27만여대의 차량을 생산했고, 이 중 62%를 미국에 수출했습니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등 그룹사들도 해당 공장 인근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현대차그룹 역시 관세 부과로 미국으로의 수출에 일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중남미 등으로 판매처를 강화하는 등 대응책을 적극 살피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향 투싼을 미국 앨라배마공장(HMMA)로 돌리고, HMMA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에서 생산해 캐나다로 넘기는 방안 등을 시행 중입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과 가전제품에 쓰이는 강판을 납품하는 철강업계도 관세 영향권에 있습니다. 다만, 물량 자체가 미미해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포스코가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약 10만톤으로 전세계 포스코 철강 판매량의 0.01% 수준입니다. 현대제철 멕시코 가공센터는 연간 30만대 분량의 강판을 기아 현지 공장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 업체와 이미 계약이 완료됐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없다”면서도 “다만, 고관세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과세 분담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멕시코 관세 부과 현실화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 가운데,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의 경우 영업이나 마케팅 비용 절감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적기 때문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 2024년 12월 기준 멕시코에 투자한 한국기업 수는 534곳에 달합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실제로 지난 4월 한국무역협회가 수출입 기업 615곳(중소기업 504곳·중견기업 51곳·대기업 6곳·기타 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관세 부과 조치에 따른 수출입 물류 애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 기업의 80.5%가 미국 관세 부과 조치로 인한 수출입 물류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기업 중 83.3%가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한 대응 방안이 없다’고 답해 관세 조치에 무력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멕시코에 관세가 부과되면 현지에 투자한 대미 수출 기업의 부정적 영향은 단기적으로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미국 업체들도 멕시코에서 부품 수입 등이 많은 만큼 미국 내에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기에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관세 대응을 위해 재고처리나 판매 다변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멕시코에 있는 공장을 철수한다든지, 미국으로 이전한다든지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기에 가까운 남미 시장을 겨냥해 손실을 좀 보더라도 물량을 돌리는 등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배덕훈·이승재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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