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 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가 농협 개혁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농협중앙회장의 막대한 권한과 비상임조합장의 장기집권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논란이 있었던 중앙회장의 연임 허용을 제외하면서 여야 간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현 정부에서도 농협 개편을 주요 과제로 보고 있는 만큼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여야, 농협 개혁 한 목소리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 개혁을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22대 국회에서 재논의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농업지원 관련 법안들을 국회에서 우선 처리키로 한 만큼 이후 농협 개협 작업을 시작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농협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상황입니다. 농해수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제외하고는 농협법 개정에 제동이 걸릴 만한 쟁점이 없었다"며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한 의원도 "비상임조합장 장기 집권의 경우 오래전부터 계속된 고질적인 문제"라며 "농촌 등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농해수위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한우법, 양곡관리법 등 법안 처리와 재해 지원을 담은 민생 관련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한 다음, 국회 계류된 농협개혁법 논의도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과 한우농가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한우법'은 윤석열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된 바 있습니다. 이재명정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을 핵심 정책으로 보고 있는 만큼 법안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날(23일) 상임위를 통과한 한우법의 경우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친 이후 본회의에 오르게 됩니다.
국정기획위에서도 농협 개혁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농협개혁'을 강조해 온 민주당 의원이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경제2분과는 농림축산식품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전에 "쌀 산업, 농지 제도, 농협 구조개편, 농업재해 대응에 있어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농협 개혁법으로는 윤준병 민주당 의원과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이 꼽힙니다. 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비상임조합장 연임을 2회까지 제한하고, 조합장 선출방식을 조합원 직접 투표로 일원화하는 내용입니다. 지역농협에 준법감시인을 1명 이상 두고, 농협중앙회 임원추천 및 선정 과정의 의사록 작성 의무화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앙회장·비상임조합장 권한 축소
박덕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의 인사 투명성 제고를 위해 인사추천위원회 운영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농협중앙회장에게 인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은·코드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가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업전담 대표이사·이사·감사위원·조합감사위원장 등을 의결하도록 하고, 회의 심의·의결 내용을 기록한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입니다.
같은 당 이만희 의원의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 및 지역농축협, 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 등의 통제기준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발의했습니다. 조공법인 등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외부 회계감사를 도입하도록 해 재무 부실을 예방하자는 내용입니다.
결국 농협 개혁법의 핵심은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한 권력을 분산하고 비상임조합장의 제왕적 권한을 제한하는 데 있습니다. 현행 농협법에서 조합장 임기는 4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상임조합장은 두 차례 연임할 수 있어서 최장 12년 동안 재임할 수 있는 반면 비상임조합장의 경우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 장기 재임이 가능합니다. 지역농협의 자산총액이 2500억원 이상인 경우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비상임조합장 10명 중 2명이 4선 이상이고, 10선 이상을 한 조합장도 있습니다. 2선 이상 조합장들이 비상임 조합장 제도를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조합장들이 장기집권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횡령, 특혜성 대출 등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한 권력도 개혁 대상입니다. 농협법상 중앙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인사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 회장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측근들이 중앙회 계열사나 각 지주사에 내려오면서 '보은 인사'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분리)' 이후에도 금융·경제 지주사들은 자신들의 지분 100%를 보유한 중앙회를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농협중앙회장의 단임제 폐지, 즉 연임 허용의 경우 농협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 중앙회장이 줄줄이 횡령, 뇌물수수 등 각종 부패 사건에 연루돼 처벌을 받으면서 2009년 연임제에서 단임제로 변경됐습니다. 중앙회장은 4년 임기로 1회에 한해 회장직을 수행하는 '단임제'로 선출되고 있습니다.
현 강호동 회장 체제의 농협중앙회는 회장 연임 추진 의사를 드러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개혁에 위배된다는 게 국회의 통일된 의견인 만큼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국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농협 개혁 등 입법 행위에 의견을 낼 입장은 아니다"라며 "중앙회 차원에서 필요시 국회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과 비상임조합장의 장기집권을 제한하는 농협개혁법이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사.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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