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적에도…은행들 대출금리 더 올린다
2025-06-19 06:00:00 2025-06-19 06:33:27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했지만, 은행들은 오히려 대출 금리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당국이 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기 때문인데요. 대통령과 금융당국 간 대출관리 기조가 계속 엇박자를 내면서 시장에서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주담대 금리 잇단 인상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이날부터 우대금리를 최대 0.25%p 축소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올렸습니다. 은행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우대금리가 줄어들면 대출금리가 오르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기도 기존 5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면서 대출 한도 역시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NH농협은행은 기존 대면 주담대의 LTV(담보인정비율)가 40% 이하일 때 0.20%p 우대금리를 제공했으나 이날부터 LTV 30% 이하에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조건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농협은행의 모바일뱅킹 앱 '올원뱅크' 가입 고객에게 제공하던 우대금리 0.10%p와 영업점 특별우대금리 0.10%p도 삭제했습니다. 
 
다른 은행들은 가계대출 수요를 모니터링하며 대출금리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대출금리를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이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안 돼 있는 상황이라 조금 빠르게 대출금리를 움직여야 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앞서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예대금리차가 벌어졌다며 높은 금리를 문제 삼았는데요.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예대금리차가 벌어져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로 예금 등 수신상품 금리는 빠르게 떨어지는 데 반면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인 상황을 저격한 겁니다.
 
예대금리차는 은행의 주요한 수익원 중 하나로 은행이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 사이에 발생하는 금리 차이를 의미합니다. 시장금리에 연동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는 통상 비슷한 보폭으로 움직이는데요. 금리 격차가 커지는 이유는 은행들이 예금금리는 빠르게 낮추고 있는 반면 대출금리는 가계대출 관리 명목으로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지난 1년 새 가파르게 벌어졌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4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신규로 취급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1.35~1.53%p입니다. 1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랐고, 3배 이상 높아진 은행도 있습니다. 
 
"금리산정 체계 투명화해야"
 
은행들은 애초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대출금리를 일절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나서 연초에 계획했던 월별 및 분기별 가계대출 관리 목표 이행을 요구하자 그 다음날 즉각 대출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입장에선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의 가이드라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박충현 금감원 은행담당 부원장보 주재로 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해 비공개 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자율 관리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달 들어 가계대출 증가폭이 심상치 않자 긴급 대응에 나선 겁니다. 대출금리를 내리면 수요가 몰리기 때문에 고금리를 유지하거나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해야 합니다. 이날 박 부원장보는 은행별 가계대출 현황에 대해서 보고받고 은행들에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자제,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 준수 등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리에 대해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금감원의 이런 주문들은 결국 금리를 오르게 만듭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 예대금리차를 들어 높은 대출금리를 지적했으나 금융당국은 오히려 가계대출 관리를 엄격히 하겠다며 은행권 대출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시중은행 외벽에 걸린 대출광고 앞을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엇박자 가계대출 정책과 대출금리 산정 체계의 불투명성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대통령은 예대마진 축소와 대출금리 인하를 통해 서민경제 부담 완화를 말하지만, 당국은 대출 총량 관리를 당부하고 있다"며 "정책 일관성이 없어 은행들로서는 어떤 정책을 따라야할지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출금리를 구성하는 가산금리 등의 산출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전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금리는 대통령이 정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대출금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가산금리 등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산금리 결정에 은행 간 담합이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민병덕 의원 등이 가산금리 산정 시 예금보험료, 출연금 등 법적 비용을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정할 때 각종 법정 비용과 지급준비금, 예금보험료 등을 차주에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가산금리 손질'을 핵심 금융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금감원의 주먹구구식 구두 개입이 계속될 경우 정책 구속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만큼 당국과 금융사 간 해묵은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금융당국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 따라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조정하며 정부와 엇박을 보이자 전문가들은 실소유자들의 창구 대출이 더욱 어려워지고 정부 정책이 신뢰감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모습.(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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