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은행들이 비금융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알뜰폰 등 혁신 사업으로 인정받은 부수업무가 수년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투자를 계속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보여주기식 전시성 사업에 막대한 자금과 영업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적자 탈출 요원한 비금융 사업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불투명한 사업 전망과 영업손실에도 불구하고 부수업무 등록과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은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 서비스를 부수업무로 정식 승인받았습니다. 현재 신한은행은 음식 주문중개 배달 앱 '땡겨요'를 운영 중입니다.
땡겨요는 2020년 12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후 1년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22년 1월 출시됐습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금융당국으로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은 사업을 말합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이 규제로 인해 혁신제품과 서비스 출시를 하지 못 할 경우 특례를 부여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입니다. 땡겨요가 정식 승인을 받으면서 앞으로 은행권은 별도 신고 없이 해당 서비스를 영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은행권의 비금융 사업 확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KB국민은행도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 승인을 통해 알뜰폰 사업 '리브모바일'을 선보이며 통신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지난해 4월 금융위로부터 정식 부수업무로 지정받았습니다. 지난달에는 우리은행이 '우리WON모바일'을 출시하며 알뜰폰 사업에 가세했습니다.
은행권에서 비금융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땡겨요는 낮은 중개수수료와 빠른 정산서비스 등 '상생형 배달 플랫폼'을 표방해 출범했지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소수 플랫폼의 과점을 깨지 못한 결과 땡겨요의 시장 점유율은 3%대에 정체된 상태입니다. 신한은행은 땡겨요 실적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땡겨요는 공공배달앱 참여, 마케팅 지원금 등을 통해 소상공인 중심의 가맹점 시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국민은행의 리브 모바일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민수 민주당 의원이 KB국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리브 모바일은 2019년 8억원, 2020년 140억원, 2021년 184억원, 2022년 160억원, 2023년 113억원의 적자를 올렸습니다.
신한은행이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 서비스를 부수업무로 승인받았다. 신한은행 배달앱 '땡겨요' 런칭 행사에서 배달라이더들이 헬멧을 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시성' 사회공헌사업 비판도
은행들은 직접적인 수익보다는 본업인 금융과의 연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금융 플랫폼 운영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늘리고, 이들의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해 금융상품 개발·판매에 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렴한 중개 수수료와 통신비를 내세워 비금융 사업의 방향성이 '이익'보다는 '상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출시한지 수년이 지나도록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은행 내부에서는 전시용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사업이었다면 수년째 적자인 사업을 그대로 뒀겠나"며 "전시성 사업이다보니 투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현 경영진이 만든 업적인 만큼 해당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야 한다는 부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땡겨요의 경우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장 시절 기획부터 출시까지 직접 챙기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부에서는 부수업무를 계속 안고 갈지를 두고 고민이 깊습니다. 만성 적자에 빠졌지만 영업 강화를 독려하기도 어렵습니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을 오프라인 영업점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판매 실적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유 업무가 아닌 리브 모바일 가입 업무에 성과를 책정하는 것에 노조가 강력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KPI에서 배점이 낮거나 없다면 공격적으로 영업할 유인이 떨어집니다. 우리은행도 국민은행의 노사 갈등을 참고해 알뜰폰 가입 방식을 비대면 판매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직원에 할당된 땡겨요 유치 의무는 따로 없지만, 지점 내 팀장 이상 직급이 가맹점 유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B국민은행 알뜰폰 서비스는 비금융 사업을 정식 부수업무로 지정받은 첫번째 사례이다. 사진은 KB 국민은행의 '리브 모바일'은 홈페이지 캡처. (사진=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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