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LNG부터 방위비까지…청구서 지뢰밭
트럼프 주장 따르며 협상장으로…'머니머신' 전락 우려
2025-04-15 18:05:58 2025-04-16 16:12:00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미 통상협상의 첫 시작은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가 될 전망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만족해한다"며 불리한 이슈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데 이어 속도전을 벼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숙원사업인 '방위비분담금 인상'도 시간문제인데, 한국 입장에선 한 걸음 잘못 디디면 폭발할 '지뢰밭'을 걷는 형국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알래스카 LNG, 패키지 될 수 있어"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15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 LNG 프로젝트가 한국의 대미 관세 협상 패키지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업성 검토 등을 위해 알래스카 현지 출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알래스카 LNG가 동북아 시장으로 오면, 운송 거리가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조금 높아도 한국에 유의미할 수 있다"며 "동시에 터미널·파이프라인 건설 때문에 초기 비용이 커질 수도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따라 가격은 바뀔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미 수출 1위인 자동차 관세를 낮출 수 있다면, 알래스카 프로젝트에서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날 한덕수 대행이 "하루이틀 새 알래스카 LNG와 관련해서 미국 측과 화상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한 뒤 알래스카 사업 추진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입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초기 추산으로만 450억달러(약 64조원)이 투입될 걸로 예상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대규모 리스크가 동반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보다 2~3배 높은 사업비에 북극 혹한을 뚫고 1300㎞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하는데요. 사업성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 지역 수요 감소, 세계 공급량 증가로 LNG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이 더 떨어지는 수순입니다.
 
실제 한전경영연구원의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LNG 공급은 오는 2027년부터 수요를 초과합니다. 이에 따라 알래스카 LNG의 상업 생산이 가능해지는 2030년엔 일본·한국시장(JKM) 가격이 MMBtu(가스 열량 단위)당 7.8달러로 하락합니다. 현재도 기록적인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감소하면서 8개월 만에 최저 수준(12.5달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계 최대 정유사인 엑손모빌을 포함해 다수 글로벌 회사는 초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불투명한 사업성, 막대한 개발 비용 등으로 철수했습니다. 업계에서 한국이 참여한다면 경제성 부담에 가스공사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미국은 한국 돈으로 오랫동안 진척되지 못한 프로젝트를 재개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한국에 막대한 양의 LNG를 고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 에너지 인프라 구축, 현지 가격 완화 등 경제발전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이익을 보는 만큼 한국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한국은 이에 대해 구체적 검토·공개도 없이 협상부터 진행하고 있는 꼴입니다. 반면 한국과 비슷한 입장인 일본은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얘기하면 들어보겠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차라리 미국산 LNG를 많이 구매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끌어내는 게 더 유리하다"고 조언합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내년 종료 예정인 카타르산 LNG 수입 계약 물량(총 702만t)을 미국산으로 대체할 경우,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 비율은 -47.1%(2024년 기준)로 하락해서 상호관세율은 23.6%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풋볼팀을 환영하는 행사가 끝난 후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서있다. (사진=AP연합뉴스)
 
알래스카 이어 SMA도 테이블 오를 듯
 
논란이 확산하자 산업부는 "알래스카 프로젝트를 협상 패키지에 포함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전면에서 '알래스카'를 띄우면서 패키지에 포함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입니다. 
 
실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트럼프정부의 '국정과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개발 사업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이를 협상 의제로 삼는 데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이 되는 수순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꺼내 들며 방위비 분담액을 5배 늘린 50억달러(약 7조3000억원)까지 증액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엔 100억달러(14조6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전임 정부와 이미 협상을 마무리 지은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9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상호관세 부과에 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조차 백지화된 상황에 미국에서는 '행정명령'에 불과한 12차 SMA 재협상은 어렵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통화를 마치고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합작 투자, 한국에 제공하는 우리의 대규모 군사보호에 대한 지불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한국과의 협상을 '원스톱 쇼핑'으로 표현했습니다. 상호관세 등을 카드로 한국에 대한 방위비분담금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경제·안보 문제를 연계해서 논의하면서, 한국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이미 국회 승인까지 마친 양국 간 협정을 바꾸는 것이어서 '2달짜리 임시직'인 한덕수 대행의 권한을 넘어섭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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