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 <옥상에서 만나요>의 주인공은 직장에서 갑질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대충 사람의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도저히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물체가 남편으로 나타난다. 새로 얻은 물체 같은 남편은 그녀에게서 '절망'을 빨아들인다. 남편은 절망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본인의 절망이 더 남지 않자 공무원 시험 오수생, 왕따에 시달리는 여중생, 기르던 돼지를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한 축산업자 등을 집으로 데려와, 남편이 절망을 빨아들이게 한다. 절망을 없앤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생활고에 지친 이들에게 '절망'을 빼앗아 가면 얼마나 삶이 나아지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도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두 축이지만 안전망 강화를 디딤돌로 깔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선도형 경제, 저탄소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의 안전망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위기가 발생할 때 가장 타격을 입는 계층의 보호막 정도가 두터울수록 경제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설수록 더 건강한 사회로 도약이 가능하다. 정부가 '절망'을 빨아가고, 안전망을 강화하기로 나선 이유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여파가 크지만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의 결과를 보면 항상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고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분배는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화 돼간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색하게 빨간불 '지표'들 뿐이다. 국민들의 삶에 점점 더 '절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염병은 취약계층의 삶을 더 악화시켰다. 취업준비생이 많은 25~29세 실업률은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코로나19로 여성 임시고용직이 가장 큰 일자리 충격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들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고용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취업자의 절반이나 된다. 실업급여 신청자가 급증하는 수치가 나와도 이들은 고용 안전망에 포함돼있다. 일자리를 잃어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때까지 정부가 보조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직(특고),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취업자 절반은 '속수무책'이다. 고용보험 테두리 안에 포함되지 않은 1300만명의 노동자가 무너지면 노동시장 충격은 더 크게 악화된다. 실제 정부가 이들에게 150만원씩 주기로 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자는 147만명에 달하며 지원 대상 인원 114만명을 크게 웃돈다. 그 만큼 힘든 사람이 많은 것이다.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한다는 '한국판 뉴딜'에 디딤돌로 마련한 '안전망 강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길 바란다. 상병수당, 전국민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초생활보장,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정부 역할이 커질수록 취약계층의 절망은 줄어들고 건강한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의 지원금이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취약계층의 안전망 강화가 성장의 디딤돌이 된다는 얘기다. 위기가 닥쳐도 누구도 낙오하지 않게 모두가 상생하고, 사회안전망 강화로 불평등이 줄어드는 또 한번의 '터닝포인트'를 기대한다.
김하늬 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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