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를 소명한 만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도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9일 논평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에도 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2018년 2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같은 해 5월부터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 관련 각종 내부 문건을 은폐·조작했고, 관련 혐의로 기소된 임직원들이 2019년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이에 앞으로도 이 사건 관련 증거인멸의 재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정농단과 삼성물산 부당 합병 등 범죄는 모두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에 그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며 "국정농단 사건 관련 대법원이 80여억원의 횡령·배임액, 89억원의 정치 권력 뇌물 지급액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이에 두 회사 합병 시 삼성물산 주식 가치는 낮추고,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건전해야 할 자본시장을 교란한 범죄 역시 결코 가벼이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일반 시민이 유사 범죄를 저질렀다면 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렸을지 생각해보면 이는 국민적 법 감정을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는 심히 불공정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은 현재 조사 중인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부당 합병을 위한 비정상적 경영으로 인한 삼성물산의 피해, 부당합병으로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힌 업무상배임 등 이 부회장의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구속영장 청구 기각과 상관없이 검찰이 이 부회장을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해 관련 혐의를 명명백백히 밝혀 기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요한 사건이고 증거도 상당한데, 구속하지 않는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며 "법원이 사건의 중요성을 생각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혐의자들이 증거인멸을 공모할 수 없도록 진작 구속했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미 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악어의 눈물과 같은 사과를 필두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가동되고 있고, 이 부회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해 여론전을 펼치는 중"이라며 "법과 제도를 총동원해 자신의 범죄를 가리려는 이 부회장의 행태를 법원은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라며 비난했다.
아울러 "검찰은 면밀한 수사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해야 할 것"이라며 "한 번의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검찰의 존재 이유가 달렸다는 사명감으로 이 부회장의 불법 승계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수사팀과 이 부회장 측에 관련 의견서를 작성해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부의심의위원은 과반수 찬성으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부의 여부를 의결하며, 부의로 의결되면 검찰총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정말로 구속할 필요가 없는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리어 묻고 싶다"며 구속영장 기각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법원의 기각 결정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저지른 회계부정과 시세조종 사실관계에 대해서 소명이 됐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지난 1년8개월 동안 검찰이 제대로, 잘 수사를 진행해 왔다는 뜻일 것"이라며 "11일로 예정된 부의심의위원회에서 수사심의위가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 김남근 변호사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기소독점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므로 당사자가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부의가 결정되면 절차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판단한다"며 "다만 법원에서 사실관계가 소명됐다고 봤기 때문에 수사심의위원회가 법원의 판단과는 달리 불기소 의견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법원에서도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무리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다고 판단했다"며 "다만 피의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얼마나 구속 필요성이 있는지가 쟁점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장심사 의견은) 이들의 범행이 단독으로 이뤄졌는지, 공범인지, 주범인지 재판에서 따지란 것"이라며 "부의심의위원회가 결론을 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지난 4일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3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이들에 대한 영장심사 결과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냈다.
불법 경영승계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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