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치국가에서 아이들이 소외되고 있다
. 아이들이라 적당할 것이란 그저 그런 선의 속에 방치된다
. 인성교육이 그런 적당주의 중 하나다
. 태평한 소리다
.
아이들 세상이라고 마냥 순진하지 않다. 일반사회와 조금이라도 거리가 벌어진 집단은 그들만의 논리로 정글이 된다. 이는 성인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 동물의 본성인가 보다.
필자가 속했던 군부대에선 선임병이 고참에게 두들겨 맞아 얼굴이 뭉개져서는 그날밤 탈영했다.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 PC방에 있다 잡혔는데 영창을 갔는지 이후 보지 못했다. 그 고참은 군장을 지고 연병장을 몇바퀴 돌았다. 그리고 무탈하게 제대했다. 탈영할 정도로 괴로웠던 피해자는 엄격한 군법으로 통제되는 집단에서조차 구제받지 못했다. 군법이 통할 거라곤 필자도 경험칙상 생각 못했으니까. 사회에서는 상식적인 준법의식이 집단논리에 막혔다.
청소년 집단도 비슷하다. 별도의 규율과 학칙, 청소년법, 소년법이 민·형사법상 존재하는 상식을 가로막는다. 때문에 아이들은 준법의식이 약하고 피해상황에서도 법을 활용할 줄 모른다. 법적 보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은 주면서 성인처럼 보호받을 권리는 주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내 아이가 범죄대상이 될지는 사실상 복불복이다.
조주빈은 25살이고 강훈과 이원호는 19살이다. 같은 죄를 저질렀는데 나이로 형량이 차이날 수 있다. 그게 탁상에서나 존재할 법한 법의 맹점이다. N번방 사건 외에도 청소년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성폭행도 저지른 20대가 붙잡혔다. 청소년이 저지르는 흉악범죄가 느는 것도 문제지만 청소년 대상 범죄도 갈수록 가관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살벌한 광경에도 인성교육 같은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 것인가. 성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가정환경이 정상참작 되나. 성인이 폭행을 당하면 부모를 찾는가. 엄마, 아빠, 선생님의 보호가 아니라 법으로 정당하게 방어할 권리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있어야 한다. 부모의 꾸지람, 학교에서의 처분, 기껏해야 소년원 등 아이들이 떠올릴 구제수단이 너무 막연하다. 인성교육만으로는 폭행, 강간에다 성착취물,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집단 따돌림으로부터 아이를 지킬 수 없다. 법부터 제대로 만들고 가르쳐야 한다. 성인과 똑같이 아이들도 경찰과 법, 신고, 고발, 손해배상, 민·형사 소송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에 살 권리가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얘기다.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누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다. 다짜고짜 달려와 돌려차기를 한다. 넋이 나간 사이 여러명에게 둘러싸였다. “가진 돈 있냐”는 레파토리가 이어졌다. 녀석들이 물러가고 난 다음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도망칠 걸 그랬나, 왜 반항 못했을까, 뒤늦게 후회와 수치심만 밀려왔다.
내가 멍청하고 용기가 없다고만 여겼지 신고 같은 건 생각 밖이었다. 지금 청소년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법 처리가 필요한 사건으로 안 느껴질 것이다. 성인이라면 당장 경찰서행인데.
녹색창에 N번방을 치니 ‘당신 곁에 우리가 있어요!’라는 문구가 뜬다. 밑에는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예방 교육자료에다 여성긴급전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구차한 게 많다. ‘112’면 충분해야 할 것을, 이러니 공연히 아이들만 수치심에 갇힌다.
이재영 온라인 부장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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