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이라는 말이 있다. 어렵고 고통스런 시기를 참고 이겨 내면, 새롭고 희망에 찬 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라는 속담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2019 북한연구학회 동계학술회의' 축사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염원하며 한 말이기도 하다.
약 70년에 가까운 남북 분단의 역사는 우리사회의 분열을 키웠고, 군사적 적대행위로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2018년 우리는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평화를 경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4월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같은 해 9월 문 대통령은 평양 5.1경기장, 15만명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남북 정상은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확약했다"고 말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2019년, 남북 분단의 긴 역사를 한 해의 노력으로 풀긴 어려웠나보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하노이 노딜'로 정리됐다. 이후 북한은 비핵화 협상 교착국면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중대실험'을 강행했다. 이때 북한은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대미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선 '망령든 늙다리'라며 '말폭탄'을 내뱉기도 했다. 특히 '연말시한'을 공언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하지만 2020년엔 기나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올 수 있다는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은 당초 예고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군사적 도발을 강행하지 않고 침묵했다. 미국의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도발이 예상됐지만 어떤 메시지도 내지 않은 채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이다. 또 이례적으로 3일 간 진행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김 위원장은 '공세적 조치'를 강조하긴 했지만 거친 표현 없이 말의 수위를 조절했다. 북미 대화의 협상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우리 정부를 향해 "남측이 미국 눈치를 너무 본 탓에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외세의존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으로부터 '대화와 협상'이라는 '중국 역할론'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 영향으로 북한 역시 연말시한을 공언해놓고도 수위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보는 남북의 셈법만 다를 뿐이라고 해석해본다.
최근 전국 대학 교수들이 2019년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선정했다. 한 몸에 달린 두 개의 머리가 서로를 이기려 하지만, 사실은 목숨을 나누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분열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한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이는 남북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금의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공명지조'라는 사자성어 처럼 남과 북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 속에서 2020년도에는 한반도 평화에 진전이 있길 기대한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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