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21년간이나 수사당국을 피해 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 이름을 이용한 '신분세탁' 때문이었다. 정씨는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영주권과 시민권을 순차적으로 취득했다.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대만과 미국인과 결혼까지 했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 관계자는 23일 "2018년 8월, 정씨 주변인물 중심으로 사건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족인 처와 자녀들의 출입국내역, 각 여권발급신청서 등을 확인한 결과, 처와 자녀들이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확인했고 그 다음 달 캐나다 국경관리국(CBSA) 일본주재관 협조를 받아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와 관련된 서류에 이들을 돌봐준 캐나다 시민권자 A씨의 이름이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A씨가 정씨와 정씨 가족에 대한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A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A씨는 국내 거주 중으로 캐나다에 간 사실조차 없고 정씨 가족이 캐나다 거주를 위해 당국에 제출한 사진도 A씨와 달랐다.
검찰은 주민등록 등 조회 결과 A씨가 2010년쯤 국내에서 이름을 바꾼 점 등에 주목해 정씨가 A씨의 개명 전 이름을 이용한 것으로 보고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 캐나다 국경관리국(CBSA) 일본주재관 등의 협조를 받아 A씨의 개명 전 이름을 이용한 영주권, 시민권 관련자료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 과정에서,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로부터 미국 시민권자인 A씨(개명 전 이름) 지문정보를 확보해 대검 국가디지털 포렌식센터(NDFC)로 보냈고, 정씨 주민등록상 등록된 지문과 대조감정한 결과, 오른쪽 시지가 일치해 정씨가 A씨의 개명 전 이름을 이용해 신분세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설명을 종합해보면, 결국 정씨는 A씨의 개명 전 이름과 범죄경력, 가족 등 신상정보를 이용해 빌리즈 시민권자라고 주장하면서 2007년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RYU, Daniel Seung Hyun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캐나다에서 살던 정씨는 이후에도 같은 수법으로 미국 영주권(영문이름 RYU, Seung Hyun), 2011년 미국 시민권(LIU, Sean Henry), 2012년 캐나다 시민권(RYU, Daniel)을 순차로 취득해 법망을 피했다. 2011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대만계 미국인과 결혼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확인한 검찰은 정씨 영문이름을 경찰을 통해 인터폴 적색수배됐던 정씨 인적사항에 포함시켰고, 결국 지난 18일 오후 5시30분쯤 에콰도르 내무부로부터 정씨가 LA를 목적지로 당일 오전 4시23분(현지시각)에 떠나는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검거에 성공했다.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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