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증권시장의 가짜뉴스
2019-04-01 00:00:00 2019-04-01 00:00:00
유럽의 거대 금융그룹을 운영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오랫동안 붙어다니는 가짜뉴스(fake news)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백여년 간의 기나긴 팩트체크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저작물이 나오고 반대로 가짜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181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의 웰링턴 장군 간에 벌어진 워털루 전투의 결과는 런던거래소의 투자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였다. 웰링턴 장군 쪽에 상당한 전쟁자금을 빌려줬던 네이선 로스차일드에게도 전쟁의 승패가 중요했기 때문에 전령과 비둘기 같은 사설 통신수단을 운용하고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사설 통신을 통해서 정부보다 48시간 앞서서 워털루의 결과를  알았다고 전해진다.
 
런던의 투자자들은 유명한 금융인인 로스차일드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이기면 영국이 전쟁에 진 것이므로 런던거래소의 주력 상장물인 콘솔(영란은행이 발행하며 영구채와 유사하다) 가격이 폭락할 것이고, 아니면 폭등할 것이다. 그래서 결과를 미리 아는 로스차일드가 콘솔을 팔면 나폴레옹이 이긴 것이고 반대로 사면 나폴레옹이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고조될 즈음 로스차일드의 대량 매도 소식이 확산되었다. 이어서 시장에 투매가 이어지고, 콘솔가격은 폭락한다.
 
여기에 워털루 전투의 전초전격인 쿼터브라스 전투에서 웰링턴의 패배가 당시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어서 패닉은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이 때에 놀랍게도 로스차일드가 대량 매수로 전환한다. 폭락한 콘솔을 바닥에서 매수한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의 패전 소식이 시장에 전파되면서 어마 어마한 차익을 벌게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8000만 파운드가 넘는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얘기가 가짜이며, 유태인 금융가를 질시한 반유태주의 세력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당시 런던거래소의 콘솔 거래로 며칠만에 백만 파운드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차일드와 워털루 전투는 다양한 책에 소개되었고 심지어 영화도 만들어졌다.
 
'루머에 사고 공시에 판다'라는 증권시장의 속설이 먹히다 보니 루머성 가짜뉴스는 지금도 난무하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말하는 것처럼 증권가격이 정보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가짜뉴스에 증시가 출렁이는 것은 증권시장이 안정되거나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기업의 내용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공시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장기업은 정기적으로 재무실적을 포함하는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분기마다 재무제표도 공개해야 한다. 그 외에도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주는 합병과 실적 변동 등이 있을 때마다 이를 수시로 공시해야 한다. 개별 회사에 대한 악의성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사례도 있지만 상장회사는 공시를 통해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앞의 위털루 전투처럼 개별 회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 영향을 주는 가짜뉴스는 공시로 바로잡을 수 없다. 더욱이 오늘 날의 가짜뉴스는 범위가 훨씬 넓어지고 내용도 교묘해지고 있다. 단순히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실의 문맥을 왜곡하거나 엉터리 통계를 전한다. 최근 1년 사이 코스닥시장에 87개사가 새로 상장되고, 28개사가 상장폐지된 것을 두고 상장폐지율 32%라고 하는 경우다. 마치 상장회사 10개사 중에 3개사가 상장폐지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증권시장의 가짜뉴스는 주로 주가조작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직접 거래에 참여하지 않고도 시세를 조종할 수 있고,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입증이 어려워서 처벌될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물선류의 거짓말에 많은 투자자가 선뜻 돈을 내는 현실이다 보니 금융당국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기적 부정거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가짜뉴스가 증권시장을 넘어 모든 영역에 파괴적 악영향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명백한 허위는 물론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전파하는 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준을 넘어선 것은 분명하다. 2015년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및 열린사회재단(OSF) 등이 가짜뉴스에 대항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 모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여겨진다. 
 
최욱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choica@konex.or.kr)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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