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헌법수호, 국회·사법 따로 없다"
2019-02-26 06:00:00 2019-02-26 06:00:00
법원행정처가 지난 2010년에 발간한 '역사 속의 사법부'에는 사회변화를 이끌어 낸 판결들이 다수 소개되었다. 사법부가 심사숙고하여 선정한 판결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이었다. 당시 정부는 베트남 파병 중 피해를 입은 군인, 유가족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잇따르자 1967년에 군복무 중 발생한 일로 연금 등을 받게 될 경우 따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국가배상법을 바꿨다. 하지만 대법원은 1971년 대법원 판사 16명 중 9명의 일치된 의견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정치권으로부터 잔인한 보복이 이루어졌다. 그 다음해인 1972년 유신헌법이 출범하면서 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은 폐지되었고, 위헌이라고 견해를 밝힌 대법원 판사 9명은 모두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던 군인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은 아예 헌법에 명문화되었다.  
 
권력분립원칙은 헌법의 기본원리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한 몸이 되는 정당국가인 현실에서 정치적 권력에 대한 사법권 독립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유신헌법이 사법부에 던진 메시지는 단호했다. 사법권독립은 휴지통에 던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고 민주화 과정에서 몇 차례에 걸친 사법파동이 뒤따르면서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법권독립은 존중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치권이 또 다시 사법권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달 30일 드루킹 일당과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김경수 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민주당은 즉각 재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 출신이며 사법농단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점을 들어 사법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도를 넘어서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혹은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27일 새로운 당대표선출을 앞두고 있는 한국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유력 당권 주자인 황교안 전 총리는 TV토론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은 존중하되 탄핵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하더니, 태블릿 PC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쟁 후보인 오세훈 전 시장 조차 "법원 판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에 황 후보가 인용하면서 편승한 것"이라며  "거기에 편승해 정치적 실리를 취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결격사유"라고 비판할 정도다. 
 
헌법재판소 결정이든 법원 판결이든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비판하거나 국민 누구나가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내지 정당대표로 출마한 후보가 판결불복을 하거나 더 나아가 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헌법의 근본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할 우려가 크다.  
 
선출직인 김 지사에 대해 법정구속을 한 것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 홍준표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확정판결 때 까지는 도정공백을 방지하기 위해서 불구속재판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1심 판결에 대한 대응은 상당히 과했다. 판결은 존중하지만 유감이다 정도로 입장을 냈어야 했다. 이제라도 보석청구를 하려는 등 법절차 내에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당대표 선출이 유력한 황 전 총리가 탄핵결정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절차가 문제면 결론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태블릿 PC 조작설은 이미 법원판결에서 허위임이 드러났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황 전 총리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황 전 총리가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에 전 국민을 상대로도 똑같은 발언을 할 수 있을까. 법치주의 준수는 보수의 절대적 가치가 아닌가.  
 
한편, 작금의 현실은 사법부 역시 책임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정치권과 불순한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헌법이 사법권독립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구성원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사법부가 국민의 자유와 헌법을 보장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사법부의 성찰이 요구되는 시절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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