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그래미' 오는 거 소원 아니였냐고 물으시는데? 소원이었잖아!"
미국 유명 방송인과의 인터뷰 도중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멤버들에게 묻고 답하더니, 다시 사회자로 시선을 향한다. “네, 꿈은 이뤄집니다!(Yeah, Dreams come true!)”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시상식 시작 전. 한국 아티스트 최초 미국 그래미에 입성한 이들의 음성이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이날 그룹은 ‘베스트 알앤비(BEST R&B)’ 부문의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RM은 “한국에서 자라면서 이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꿔왔다”며 “꿈을 이루게 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고 소감과 포부를 전했다. 또 이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인 뮤지션 허(H.E.R.)에게 축하와 함께 트로피를 건넸다.
61회 그래미어워즈에 참석한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
1958년 시작된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 ‘NARAS’)에서 주최하는 음악상이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힌다.
이날 시상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에 모두 초청받은 기록을 세웠다. 그룹은 재작년과 지난해 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지난해 아메리칸 뮤직어워즈에서 '인기 소셜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그래미시상식 국내방송의 중계를 맡은 DJ 배철수는 “BTS를 보면 닐 암스트롱 얘기가 생각난다”며 “자신의 작은 발자국의 인류의 큰 도약으로 이어질 것이라 했듯, BTS 이후 다양한 국내 뮤지션들이 그래미 수상자로 수상하길 바라본다”고 말했다.
함께 해설을 맡은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대체로 그래미에서 상을 받은 이들은 첫 해에 시상자로 간단히 신고를 하고 이듬해 상을 받거나 무대에 오르는 흐름을 보였다”며 “이날을 계기로 기성세대들도 BTS를 알게 될 것이고, 앞으로 활발하게 좋은 곡을 보여주고 공연을 한다면 내년에 트로피를 가져갈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차일디쉬 감비노. 사진/소니뮤직코리아
이날 그래미 어워즈의 주인공은 지난해 세계적으로 ‘디스 이즈 아메리카(This is America)’ 열풍을 이끈 차일디쉬 감비노였다. 그는 이날 이 곡으로 그래미어워즈의 본상 4개 중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과 ‘베스트 뮤직비디오’와 ‘베스트 랩/송 퍼포먼스’까지 총 4관왕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또 주요 부문 수상자임에도 참석하지 않아 1989년 조지 마이클 이후 처음으로 그래미에 다른 의미의 기록을 새겼다. 이날 그의 수상을 대신한 동료들은 “이 곡은 어디서 태어났든, 출신이 어디든, 모든 분들에게 의미가 있는 곡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이 자리에 오지 않았지만 앨범에 함께 했던 감비노에게 인사를 전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진모 평론가는 감비노의 수상에 대해 “전통적으로 흑인 음악에 보수적이었던 그래미가 충격 요법을 동원한 것 같다”며 “표절이라는 논란도 많았지만 결국 그래미가 백인 위주가 아닌, 새 지향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감비노 외에도 올해 그래미는 예상을 뒤엎는 진행과 공연, 수상 결과들이 잇따랐다. 진행자로 나선 앨리샤 키스를 비롯 미셸 오바마,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등 여성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된 무대가 많았고, 주최 측은 흑인음악도 존중하는 분위기의 대대적인 전환을 꾀했다.
실제로 ‘모타운 레코드’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는 75세 고령의 다이아나 로스가 무대에 섰다. 모타운레코드는 1960~1970년대 흑인음악 열풍을 주도했던 레이블이다. 슈프림스와 잭슨5, 포 탑스 등이 소속돼 미국 사회 내 음악의 인종적 결합을 앞당겨왔다.
이날 빨간드레스를 입고 '리치 아웃 앤 터치(Reach out and touch)'를 부른 로스는 무대 정중앙까지 나온 그는 세계인들을 대화합의 장으로 이끌었다.
DJ 배철수는 “61주년인 그래미와 모타운레코드는 한살 차이로 생을 같이 해온 셈”이라며 “다이아나 로스는 스티비 원더, 잭슨 파이브 등과 모타운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거장이 신인 뮤지션들과 한 무대에 서는 다채로운 무대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 음악계도 비슷한 무대가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고 견해를 전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국내에선 한국 음악을 결산하고 되돌아보는 방송들이 시청률이 낮아 환영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평론가로서 책임이 크다. 차트부터 잡고 시상식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올해의 앨범상’은 컨트리 팝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돌아갔다. 컨트리 장르는 미국 외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미는 음악적 완성도를 고려해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내놨다.
임진모 평론가는 “켄드릭 라마나 드레이크, 레이디 가가 등이 본상의 대표적인 수상자로 거론됐으나 전혀 의외의 결과들이다”며 “컨트리 음악은 미국 외의 지역에선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장르지만 최근 팝 느낌을 가미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두아 리파는 ‘올해의 신인상’과 ‘베스트 댄스 레코딩’ 등 2관왕에, 레이디 가가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와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등 3관왕에 올랐다.
이 외에도 ‘베스트 랩 송’에 드레이크, ‘베스트 랩 앨범’에 카디 비, ‘베스트 알앤비 앨범’에 허 등이 무대로 올라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전설적인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포스트 말론과 합동 무대를 선보였고, 여성 흑인 아티스트 3명이 지난해 사망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추모 무대를 갖기도 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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