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기본적으로 원·피고 상호간 치열한 투쟁이다. 재판장이 심판을 보기는 하지만 그에게 심증을 주기 위한 양측의 공방은 섬뜩할 정도로 피를 튀긴다. 그래서 "'소송의 스포츠화'를 경계하라"는 법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법조기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취재가 바로 재판(공판)취재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말도 어렵지만, 원·피고의 주장이 모두 사실 같다. 목숨을 걸고 논리를 펴니 아니 그러기 어렵다. 그런 탓에 '더 정열적인' 주장에 귀를 기울여 중도를 잃는 경우가 더러 있다. 취재를 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에 들어가는 막내 기자들이 기계적으로 수련하는 것이 '풀워딩'이다. 법정 내 모든 소리와 장면을 기계적으로 적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그것을 보고 뺄 것은 빼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을 수 있다. 물론 이것조차 안 되면 기사는 '킬'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기자들이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양측의 주장을 기사에 공정하게 담기 위함이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고 있는 재판기사를 비롯한 몇몇 사건보도는 매우 유감이다. 특히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사건은 정도가 심하다.
선수 상해죄로 기소된 그는 현재 성폭행 혐의로도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 재판을 보도한 대부분 기사들을 보면 사건 현장은 신성한 법정이 아니라 차라리 죄수를 향해 군중들이 돌을 던지는 교수형장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12월17일 조 전 코치 측 증인으로 전 대표팀 트레이너가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지만 그의 진술을 기사에서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조 전 코치의 유죄가 확정된다면 용서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형사 피해자의 법정 진술에 대한 반론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조 전 코치는 첫 공판에서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된 듯 보인다. 한쪽 말만 듣고 쏟아낸 소요적 기사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주입 받은 국민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보다 못한 조 전 코치 부모들이 최근 어렵게 입을 열고 "한쪽의 말만 듣고 단정하지 말고, 정확한 진상 파악과 합당한 단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들을 대신해 상처를 입은 선수들과 부모님께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라는 사죄 뒤에 나온 말이었다.
여론은 참혹했다. 이를 전한 기사 댓글에는 하나 건너 “어이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입 닥쳐라”, “물타기 하지 마라”라는 비아냥이 박혔다. 이건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우리 얘기도' 한번만 들어봐 달라는 부모 읍소가 과연 조롱당할 일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이런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은 언론의 잘못이다. 판결은 법관이 내리는 것이다. 그 전까지 당사자의 주장은 공평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것을 잊은 언론은 그야말로 펜대 뒤에 숨은 야만이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었는가. 그 책임은 반드시 돌아오고, 피할 수 없다.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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