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공항. 꼬레(Coree·한국)에서의 지난 몇 주간을 회상하고 있다…나는 남쪽 꼬레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사랑했다. 그러다 문득 북쪽 꼬레에도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남쪽에 한국인이 존재하는 한 남쪽 꼬레를 사랑할 것이다. 북쪽에도 한국인이 존재한다면 그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2년 가을, 프랑스인 얀 무악스(Yann Moix)가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쓴 글이다.
얀 무악스, 그는 28살에 <하늘을 향한 환희(Jubiliations vers le ciel)>로 공쿠르(Goncourt) 신인상을 받고, 45살에는 <탄생(Naissance>으로 르노도(Renaudot)상을 탄 프랑스 유명 작가다. 포디움(Podium)이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자 정치비평가이기도 하다. 한국을 남달리 사랑하는 무악스는 북한의 개방을 위해서도 매진하는 중이며 지난 9월 평양을 재차 다녀오기도 했다. 프랑스의 명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외(Gerard Depardieu)와 함께 9월9일 있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고 온 것이다. 이 때 무악스는 북한과 드빠르디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약 1시간 반 분량의 다큐멘터리도 촬영했다. 배짱 좋은 북한과 드빠르디외의 탄생 70주년을 담은 영화로 제목은 ‘70’이다.
이 지성인은 세계에서 가장 독재 국가인 북한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그는 솔선수범하며 은둔의 나라 북한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상호 개방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무악스는 내년 여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몰리에르(Moliere)를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북한 작가들의 책을 불어로 번역해 세상에 알릴 계획도 있다. 무악스는 지난달 20일 베에프엠(BFM) TV에 출연해 “그들(북한 사람들)은 선생님들이 필요하다. 나는 프랑스 문학을 강의할 것”이라고 침착하게 밝혔다. 또한 그는 “내가 북한에 가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과 악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이 나라는 우리에게 달나라만큼이나 멀다. 만약 작가나 영화인들이 이따금씩 이 나라에 흥미를 가진다면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더 잘 알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악스는 “방문객의 관례적 코드를 깨뜨린 제라르 덕에 북한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었다. 완전히 어둡고 완전히 편파적인 체제에 놓인 한 국가에서 바깥세상을 알고 싶어하고, 웃고 즐기며 사랑하려는 북한 사람들을 봤다”라고 라디오 방송 <프랑스 엥포(France Info)>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세 번의 여행을 하고도 이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우 엄격한 북한의 코드를 깨뜨린 제라르 덕에 나는 나와 흡사한 (북한) 사람들을 봤다. 나는 어둡고 침묵으로 일관된 표정을 멈추고 꽃처럼 개화하려는 인간들을 처음으로 봤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 가이드는 계급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코미디언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제라르 드빠르디외는 한 여승무원과 농담을 하기도 했고, 평양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농장에서 북한의 옛 지도자들의 동상을 배경으로 총지배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 나라에 가서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풀포기를 보길 희망한다. 이는 아름다운 이미지로 아주 어두운 나라에서도 어쨌든 삶은 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피력했다.
올 한해 세계의 모든 이목은 한반도, 특히 평양에 집중돼 있다. 은둔의 나라·비정상 국가였던 북한이 우리와 손을 잡고 미국과 화해의 장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의 경제지원을 받으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얼어붙은 한반도를 해빙무드에 젖게 했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백두산 천지까지 다녀왔다. 이 회담에는 한국의 많은 경제인들이 참석해 남북 공존이 경제적으로 큰 이점을 가져올 것임을 시사했다. 30년, 또는 50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봤던 통일이 우리 세대에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 뭉클하다. 남북문제에 새 장을 연 문재인정부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남북 정상회담이 수차례 열렸지만 북한주민들의 진짜 생활은 알 길이 없다. 무악스의 말처럼 북한은 아직 우리에게 달나라만큼이나 멀기만 하다. 가두행렬에 동원된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아닌 실제의 북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아야 남북문제를 더욱 진전시킬 수 있다. 정부는 이 점을 감안해 북한과의 교류를 좀 더 넓고 다양한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무악스처럼 북한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상호 개방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한국의 작가, 영화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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