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밝힌 ‘법원 제도개혁 추진안’은 사법행정권과 인사권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이제까지 대법원장이 가졌던 전권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가다.
지금까지 사법행정을 맡아 온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중 한명이 처장으로 있으면서 지휘해왔으나 처장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대법원장이 재판권과 예산에 관한 권한이 포함된 사법행정권을 동시에 행사하면서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용훈 대법원장도 폐지 시도
재야법조계는 물론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비근한 예로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인 2005년, 법원행정처의 비대화를 막고 대법관이 재판에만 관여할 수 있도록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의 겸직규정을 폐지한다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대법원에서 추진됐다.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법관문화의 관료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외부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산됐다.
차관급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는 것 역시 사법개혁과 관련된 오랜 지적이었다. 헌법에는 법관의 종류를 대법원장과 대법관, 판사로만 구분했지만 재판절차의 특성을 고려해 법원조직법으로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허용했다.
'승진 줄서기' 없어질 듯
고법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실심을 최종적으로 다루는 막강한 지위다. 법원 내에서는 물론 법원을 나가 변호사로 개업해도 그 경력만으로 몸값이 최고로 치솟아 이른바 ‘법관의 꽃’으로 불려왔다. 이 때문에 대다수 법관들이 고법부장 승진을 위해 대법원장 아래로 줄을 서고, 법원행정처가 그 통로로 이용돼 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고법 부장제도’ 폐지 요구 역시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돼 왔지만 역대 대법원장들은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법관들은 “대법원장이 지목하면 승진한다. 당연히 알아서 줄을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9년 정기인사부터 각급 법원 법원장 임명 시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결정도 파격적이다. 김 대법원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 임기 내에 전국 법원에 안착 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법원공무원 노조도 정책 참여
대법원장 직속 실무추진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 구성에 사법발전위원회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함께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을 포함한 것도 혁신적이다. 지난 2005년 정식 출범한 이후 법원공무원노조가 활동한 지 13년째지만 대법원장의 정책적 결단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그동안 외부로부터 제기돼 온 ‘셀프개혁’, ‘개혁추진 세력의 한계’ 등 비판을 거의 대부분 받아들인 것”이라면서 “사법부를 살리려면 국민적 지지 없이는 안 된다는 판단이 이번 결단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의지 분명해 보여"
이번 제도개혁 추진안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는 긍정적 반응이 많이 보인다. 여러 법관들은 “법원행정처나 고법부장 승진제 모두 대법원장으로서는 절대 놓을 수 없는 ‘권력’"이라면서 "이번에 시기를 지목해 폐지를 선언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법관도 "지금까지 나온 사법개혁안 중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의지가 분명해보인다"고 평가했다. 법원 내 일반 공무원들도 "법원행정처가 비법관화 되면 법원행정고등고시 출신 등 일반직들이 사법행정 분야로 많이 진출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야법조계도 '파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변호사 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표된 역대 대법원의 사법개혁안 중 가장 파격적"이라고 반겼다. 중견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는 "대승적 선택"이라면서 "사법행정의 비법관화로 변호사들에게도 다소나마 활로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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