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부르는데 가야죠. 요구사항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공 SI(시스템통합) 분야에만 10년째 몸담은 개발자 김모(37)씨. 신입사원 시절부터 겪었던 일들이 PL(프로젝트 리더)이 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프로젝트 초기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정해지고 계약서까지 작성하지만 그대로 끝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씨는 "발주처인 공공기관의 담당자들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의 제안대로 결정이 되더라도 이후 추가와 변경 사항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공공 SI 업계 종사자들은 지난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이 같은 업계의 관행이 바뀔 될 것으로 기대했다. 유 장관이 LG전자와 LG CNS 등을 거친 개발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잘 아는 장관이 왔으니 이러한 업계의 오래된 고충을 덜어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유 장관은 공공 SI 업계의 관행을 바꾸기 위해 취임 직후인 지난해 7월 '아직도왜 TF'를 발족시켰다. TF에 참가한 SI 업계 종사자들과 관련 교수들은 같은 해 9월까지 총 9차례 회의를 거쳤다. 10월부터 11월까지 관련 부처들과 협의를 거친 뒤 ▲요구사항 명확화 ▲과업 변경 및 추가시 적정대가 지급 ▲원격지 개발 활성화 ▲기업의 소프트웨어(SW) 지식재산권 활용 촉진 ▲상용SW 활성화 등을 결과물로 내놨다. TF는 지난해 12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들을 발표했다. 당시 유 장관도 "근성 있게 이 문제를 풀겠다는 각오로 실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과거의 관행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공공기관의 담당자들이 변하려 하지 않는다', '요구사항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은데 추가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 등이 이유로 꼽혔다. 공공 SI 업계의 한 임원은 "장관만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담당 공무원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일한다"고 말했다.
적정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기획재정부와도 연관된다. 각 부처나 공공기관들이 이러한 현장의 사정을 설명해도 기재부의 담당자들이 예산을 늘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실무 담당자들이 인식을 달리하지 않고, 국가 예산을 주무르는 기재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아직도왜 TF의 활동은 영원히 이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박현준 산업1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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