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51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에 다녀왔다. 서울에서는 날씨가 급변해 우박이 내릴 정도로 쌀쌀했다는데, 마닐라의 한낮 기온은 40도 가까이 치솟았다.
발이 닿는 곳 마다 더위가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에서 나올 때마다 덥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열기가 느껴진 곳은 또 있었다. 바로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장과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장이었다. 두 회의장에서는 각각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됐는데, 4?27 판문점 선언 대한 지지가 포함돼있었다. 한중일 공동선언문에는 오는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협력을 다짐하는 표현도 담겼다.
출장 며칠 전 회의 준비 상황을 알아봤을 때만 해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짚어보기는 하겠지만 남북관계 개선 관련 내용이 선언문에 구체적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정부 관계자)던 점을 감안하면, 현장에서의 뜨거운 관심과 우리 대표단의 설득 노력이 잘 맞아 떨어져 성사된 의미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한 일본인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공동선언문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지지가 포함된 것과 관련 일본 측이 당혹스러워했다는 분위기를 전했지만, 김동연 부총리는 "저와 이주열 총재가 판문점 선언에 대한 지지를 제안했고, 아무도 이의 제기가 없는 상태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돼 공동선언문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기도 했던 일본인 기자는 기자회견 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유창한 한국어로 "(내가 특파원을 했던) MB 때는 재미없었는데"라며 최근 남북관계 개선 상황에 큰 흥미를 보였다. 그는 '일본 측에서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화를 빌어 달라'고 하자 "물론"이라며 밝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때부터 이번 회의까지 만나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마다 물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며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을 전하기도 했다.
당장 북미정상회담부터 많은 난관들이 남겨져 있지만 모처럼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뿐 만이 아닌 많은 국제사회의 염원을 버팀목 삼아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 아닌,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녹일 수 있는 뜨거운 바람으로 오래도록 불어주길 바란다.
한고은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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