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사주 매입 전략을 놓고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상 CEO의 자사주 매수는 주주친화 의지와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만큼 호재로 작용한다. 특히 채용비리 의혹과 지배구조 개선 등의 현안이 대두된 상황에서 자사주 매수는 CEO의 경영 의지 표명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지주 회장 및 은행장의 성향에 따라 투자 유형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주요 은행 및 지주 최고경영자 자사주 현황.평가액; 12일 오후 12시 기준. 표/백아란 기자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지난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자사주 5000주를 장내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취임 후 첫 자사주 매입으로, 향후 경영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주주들에게 알리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역대 최고치인 1조512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가는 이날 12시 기준 1만6100원으로 지난해 최고치(1만9650원)보다 16%가량 낮다.
손 행장의 입장에서는 올해 목표로 ‘종합금융그룹 도약’을 삼고 있는 만큼, 주주 친화 정책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보이고, 투자심리를 개선해야 한다. 지주사 전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선 주가 회복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수장의 자사주 매수 이후 주가도 상승했다. 지난 9일 손 행장 매입 당시 1만5650원이던 우리은행 주가는 3.8% 가량 오른 상태로 거래 중이다. 현재 손 행장이 보유한 자사주는 우리사주 2만2831주를 포함해 모두 2만8127주로, 평가액은 이날 12시 기준으로 환산시 4억5280만원에 달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1배로 여타 시중은행에 대비해서도 여전히 저평가돼 있는 상황”이라며 “손 행장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우리은행의 경영성과와 수익성 등 펀드멘탈 개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언급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연임 등 큰 이슈가 있는 시기마다 자사주를 매입해왔다.
실제 2014년 회장 선임 직후 5300주를 사들였던 윤 회장은 이듬해 7월 4700주를 추가 매수했으며 회장추천위원회가 열렸던 지난해 8월과 9월을 네 차례에 걸쳐 4000주를 매입했다. 연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자사주 1000주를 6만900원에 장내 매수하며 총 1만5000주를 보유하게 됐다. 이번 자사주 추가 매수는 금융권 지배구조 문제와 윤 회장 증손녀에 대한 특혜채용 의혹 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실시된 것으로, ‘경영권 안정’에 대한 시그널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취임 후 단 한 차례도 자사주를 매수하지 않았다.
조 회장이 기존에 보유한 주식은 1만3429주로 우리사주조합 조합원계정 주식을 제외하면 9829주다. 이는 위성호 신한은행장이 소유한 주식수(1만3419주·우리사주 제외)보다도 작은 규모다.
신한금융은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단행하는 배당확대 정책 또한 실시하지 않았다. 앞서 신한금융의 지난해 순이익은 2조9483억원으로 전년보다 4.37% 늘었지만, 배당은 주당 1450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와 관련해 신한금융 관계자는 “현재 신한지주의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높일 수 있는 기업과 업종, 미래 성장성이 담보되는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서 M&A 기회를 찾고 있다”며 “배당뿐 아니라 ROE 제고를 통한 주가 상승과 다양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한 번에 크게 매수하는 유형으로, 은행지주 CEO가운데 가장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2008년(4000주)부터 2010년(2000주), 2013년(2000주)에 이어 2015년 4월(2725주), 12월(1000주)를 매수해 현재 5만1100주를 갖고 있다. 2012년 회장 취임 후 2015년까지 단 3차례만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주식수는 은행권 CEO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다.
이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5623주·우리사주 조합원계정 포함)과 비교해도 9배가량 많다. 다만 2015년 이후에는 자사주를 추가 매수하고 있지 않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김정태 회장의 경우,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사주가 많다”며 “더욱이 3연임에 대한 최종 승인을 코앞에 뒀기 때문에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기보다는 주총 마무리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나은행 채용 비리와 연임, 단독 사내이사 등으로 구설에 오른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강화하기보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은행 다른 관계자는 “금융권 수장의 자사주 매입은 수익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작용해 주주가치 제고에 영향을 준다”면서도 “보통 저가 매수나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자발적으로 매입을 하기도 하지만, 스톡그랜트 등의 형식으로 지급되기도 하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수하기보다)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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