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지난 1일 공인 에이전트(선수 대리인) 제도가 시행됐다. 대표적인 국내 프로스포츠로 꼽히면서도 비공인 에이전트들이 음성적으로 활동한 전례에서 벗어나 정식 장치를 마련했다. 공인 에이전트 시행으로 그간 부족했던 선수 권익 보호와 프로야구 산업화 사안이 진전되리라 기대된다. 한편, 업계가 포화상태에 이른 변호사들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꿈꾸며 이번 에이전트 시장에 대거 진입해 시선을 끌고 있다. 구단과 치열한 협상 끝에 선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그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한국판 주인공이 쏟아질지 관심사다. 시행 초기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협의해 이번 프로야구 공인 에이전트를 추진·시행한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변호사(사법연수원 29기)를 만나 에이전트 시행 배경과 변호사들의 대거 지원 이유 등에 대해 들었다.(편집자주)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동 선수협 사무실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광연 기자
지난해 12월 선수협 주관의 첫 자격 시험을 거쳐 91명의 공인 에이전트가 확정됐다. 1일부터 정식 활동을 시작했는데.
공인까지 완료됐으니까 이제 에이전트로 활동하면 된다. 일단 기본적으로 선수들과 정식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 KBO와 선수협이 합의하는 구단 출입 규칙이라든지 구단과 접촉하는 방법 등이 결정된다. 에이전트들은 이런 점을 보고 활동하면 된다.
이전처럼 연봉 계약 때 선수가 구단을 직접 상대하며 경기 외적으로 힘쓰지 않게 됐다. 선수는 도입을 환영하지만, 구단들은 껄끄러워하지 않나.
선수들은 도입을 환영하지만, 에이전트 채용은 개별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다. 구단들은 분명히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구단들도 장기적으로 보면 도움이 된다. 구단 운영이 좀 더 정교해지고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전에 선수가 구단과 직접 부딪히면 감정이 상했는데 중간에 에이전트가 있으면 중화 작용을 할 수 있다. 또 에이전트와 구단이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서로 얘기하다 보면 연봉 협상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고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전까지 선수와 구단이 직접 만나면 아무래도 구단이 매일 선수를 보며 관리하니 '정'에 호소하거나 팀 내 관계를 이용해 계약하려고 했다. 에이전트가 있으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공인 에이전트 탄생은 단순히 선수 계약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선수 이미지 제고, 광고 계약 등 프로야구 산업화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 프로야구 산업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 산업에 필요한 인적 인프라가 구축됐다고 생각한다. 선수는 열심히 경기하고 에이전트는 그 선수 가치를 높인다. 광고 후원 계약은 꼭 에이전트가 아니어도 광고회사나 기획사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전트가 선수 가치를 가장 잘 보고 스타로 발굴하고 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전문적이고 경력 있는 분들이 프로야구 에이전트로 활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 구단 구조라서 그간 마케팅 등 여러 부분에서 선수는 뒤로 좀 빠져 있었다. 에이전트이 있으면 선수의 개별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좀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면 팬서비스도 좀 더 좋아지고 선수를 보기 위해서 더 많은 팬이 올 수 있다. 프로야구 산업화를 위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프로야구는 프로축구와 달리 공인 에이전트가 없어 비공인 에이전트들이 선수 계약을 주도했다. 어떤 문제점이 있어 공식적으로 에이전트를 뽑았나.
사실 대리인 제도는 선수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간 구단들의 담합이나 KBO 정책에 의해 시행되지 못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17년 전인 2001년 대리인을 못 쓰게 하는 KBO 규정은 잘못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하고 계약이나 선수 관리는 전문적인 에이전트들이 하는 게 맞다. 프로축구는 이미 국제축구연맹(FIFA)이라는 전 세계 기준이 있고 이적시장 등이 크게 발달해 에이전트가 많다. 야구도 세계시장이 크긴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정도밖에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국내 리그 중심으로 돌아갔다.
비공인 에이전트들은 이번 공인 에이전트 시험에 적극적으로 응시했나. 이제 이들은 어떻게 되나.
비공인 에이전트 중 시험을 본 사람도 있고 안 본 이도 있다. 합격한 사람도 있다. 앞으로 저희 공인을 받지 않고는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없다. 당연히 공식적으로 출범했으니까 구단들도 비공인 에이전트와 계약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비공인 에이전트들이 활동하면 제재할 수 있다. 직접 벌금을 매길 수는 없지만, 공인받지 못하면 결격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5년간 저희에게 공인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즉 5년 동안 활동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활동할 수는 있지만, 선수나 구단이 그런 사람들과 계약하지 않는다고 본다.
프로야구 에이전트 한 명이 보유할 수 있는 선수 수를 총 15명, 구단당 최대 3명으로 제한했다. 이 조항은 도입 취지와 맞지 않게 에이전트 시장이 위축될 소지가 있는데.
보유 선수 제한이 불합리한 게 맞다. 도입 전 KBO나 구단들은 에이전트들이 소위 '갑'이 돼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선수협은 안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KBO와 구단에서 제한하기를 강력히 원했다. 공인 에이전트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데 우선 시행 자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차차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선수가 에이전트와 계약한 뒤 구단에 계약 사실을 알리기도 아직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공인 에이전트제가 정착되면 규제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로축구는 한 명의 선수 이적에 여러 에이전트가 난입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없나.
프로축구는 자유계약(FA) 형태이기에 구단과 3년 계약했으면 3년 뒤 언제든지 FA가 되거나 1~2년 뒤 이적료만 내면 팀을 옮기는 구조다. 프로축구 에이전트는 선수에 충실한 대리인이라기보다는 구단과 선수를 연계해주는 중개인의 성격이 더 짙다. 수수료도 구단과 선수들에게 모두 받으니 쌍방대리인 형태다.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이해 상충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프로야구는 선수에 충실한 미국 프로스포츠 대리인제를 받아들였다. 프로야구 에이전트가 선수와 계약하려면 계약 기간을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등 규정을 넣어 엄격히 관리하고자 했다.
김 총장(가운데)이 지난해 12월5일 오후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7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시상식에서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에이전트에 합격한 91명 중 39명(사법연수원 출신 18명·변호사시험 출신 21명)이 변호사다. 포화 상태인 변호사 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지 주목되는데 변호사로서 어떻게 보나. 변호사 가운데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는 많지 않다.
계약은 반드시 법적 분쟁이 생길 여지가 있다. 선수 권리나 보호 측면에서 변호사들이 필요하다. 다만 변호사가 선수들을 잘 관리하고 계약을 잘할 수 있는지는 부딪혀봐야 하는 문제다. 야구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유명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는 실제 야구를 했던 사람이고 야구를 잘 알았다. 야구를 잘 알고 선수와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는지가 핵심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게 아니다. 변호사 가운데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에이전트 시험에 앞서 변호사 업계에서는 일본처럼 변호사에게만 시험 자격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반인에게 시험을 개방한 이유는 다양화 관점에서 폭을 넓힌 건가.
그렇다. 먼저 일본은 규정만 그렇게 돼 있다. 애초 저희는 경력 있는 분들이 지원했으면 했다. 처음에는 학생들도 지원했는데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겠나. 스펙 쌓는 자격증 정도밖에 안 된다. 경력이 검증된 사람들을 뽑으려고 했는데 KBO나 구단들이 기존 비공인 에이전트만 활동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런 부담이 있어 다 개방하자고 이야기됐다. 정부 차원에서도 누구한테 특별히 우선권을 주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결격 사유에만 해당하지 않고 자격시험 후 합격하면 공인 자격을 내주는 시스템이 됐다.
에이전트 수수료 상한선을 선수가 받는 연봉의 5%로 정했다. 국내 스포츠 시장 규모는 미국과 유럽보다 작다. 국내 프로야구 연봉 규모를 보면 순수 연봉 700억원에 FA계약 포함 1000억원 정도다. 5%라고 하면 50억원 정도인데 시장이 너무 작지 않나.
프로야구는 1년에 FA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소위 계약 규모가 50억원 이상인 A급 선수들은 1년에 3~4명 정도 나오는 데 그쳐 한계가 있다. 그 밑의 선수들은 연봉이 높지도 않고 변동의 여지도 크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변호사를 예로 들면 여러 분야를 거치다가 에이전트 시장이 커지면 이쪽으로 뛰어들 수 있고 또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법률서비스를 하거나 고객을 늘릴 수 있다.
연봉 1억원 이하 선수들이 굳이 비싼 수수료를 들이며 에이전트를 고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텐데.
연봉 1억원 이하 선수들도 자기 관리나 스폰서를 위해 에이전트를 고용할 수 있다. 선수들이 당장 에이전트를 쓰며 연봉 협상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FA가 아니면 구단과 관계가 '을'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구단과 연봉 협상이 안 됐을 때 KBO에 판단을 맡기는 연봉조정 신청을 하면 에이전트를 잘 활용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만들어 근거를 가지고 KBO 연봉조정위원들을 설득하므로 에이전트 임무가 매우 커질 수 있다.
프로야구는 FA로 구단을 옮길 시 추가로 보상금이나 보상 선수를 내줘야 하는 등 미국과 달리 여러 제약이 따른다. 에이전트 시장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KBO에 어떤 점을 요구하나.
현재 KBO 내 불공정한 규약이 많고 에이전트 시장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에이전트 시장이 확대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불공정 규약 탓이다. 아무리 잘난 에이전트가 온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수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고 FA나 연봉조정을 신청할 때도 선수가 불리하다. KBO 총재가 선수 연봉을 결정하는 연봉조정위원을 지명하기 때문에 선수 처지를 대변할 수 없다. KBO에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FA 기간 축소나 FA 선수 등급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공인 에이전트 도입이 선수 권익 개선의 도화선이 될 수 있겠나.
그렇다. 하지만 에이전트제가 잘 되려면 말했듯이 기존 KBO 규약들이 선수 중심으로 또 선수 권익을 보호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에이전트라기보다는 선수들의 가치나 지위에 비해 너무 불공정하게 만들어진 규약을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드래프트로 뽑히는 선수들은 입단할 때부터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 또 최소한 여덟 시즌 구단에 있어야 비로소 FA가 된다. 2차 드래프트처럼 중간에 옮길 기회도 있지만, 다른 구단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FA가 되는 기간도 미국이나 일본보다 2~3년 더 길다. 막상 FA가 되더라도 다른 구단이 선수를 데려가려면 원래 구단에 보상 선수나 보상금을 줘야 한다. 이러다 보니 선수가 움직일 수 없다. 정말 초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점점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 특A급 선수만 100억원대 계약을 따내고 그 밑에 있는 선수들은 아예 움직일 수 없고 구단이 주는 대로 받거나 은퇴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다. 이번에 부임한 정운찬 KBO 총재는 야구에 조예가 깊고 여러 활동을 했다. 구단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가치를 높일 때 야구 산업 전체가 발전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고 저희는 보고 있다. 말한 부분들이 앞으로 잘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