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조용훈 기자] 독일의 ‘환경수도’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의 ‘아이가 안전하게 더럽혀지는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은 참여예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예다. 우선 지자체 공원·건설부서 공무원이 신문·포스터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취지를 알려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다.
의견이 모아지면 전문가가 이를 설계안으로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불충분한 부분에 대한 수정할 기회가 주어진다. 실제로 놀이터를 만드는 날엔 어린이들은 각자 해변에서 가져온 조개나 돌 등으로 놀이터를 꾸미고, 학부모들은 나무를 심는다.
놀이터 개장일은 마을잔치 날이다. 관리도 시민들이 참여한다. 모래가 오염되지 않았는지, 놀이기구가 망가지지는 않는지 시민들이 수시로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 특히 어린이들은 어떤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인지 배울 기회를 갖는다.
개발도상국에서 시작된 참여예산은 유럽 선진국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2010년만 해도 유럽 내 참여예산제를 도입한 도시는 300곳에 불과했지만, 2년 후에는 1300여개 도시가 이 제도를 채택했다. 참여예산을 도입한 세계 2700여 도시 중 절반이 유럽에 모인 셈이다.
프랑스 파리시는 2014년에 2000만 유로를 참여예산으로 결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미 선정된 15개의 프로젝트에 투표하는 방식으로 파리 시민 200만명 중 4만명이 참여했다.
참여예산의 확대는 2000년대 초 기존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형태였던 대의민주주의가 한계를 보이면서 시작됐다.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데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결국 몇몇 도시의 혁신을 시작으로 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보완이 이뤄졌다.
참여예산과 여론조사·토론회 등 기존 의견수렴 절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민이 예산 편성과정에 독립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17개 광역 지자체는 지난해 예산 259조원 가운데 1조1000억원(0.43%)을 참여예산으로 따로 편성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참여예산이 보다 지방자치의 대명사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깝다는 점이다. 참여예산은 최근 ‘동네의 문제를 동네에서 해결’하는 수준까지 지향하고 있다.
참여예산은 시민들이 선거 때만 가지던 공적관심을 일상적으로 가지게 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것이 각자의 직업과 계층, 관심사, 문제의식과 맞물리면서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발전까지 이끌고 있다.
다만, 서울시를 비롯한 국내 참여예산제도 역시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 역시 적지 않다. 우선 시민 참여도가 아직은 현저히 저조하다. 1000만명이라는 서울 시민 중 실제 참여예산 과정에 관여하는 시민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다수는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하다.
또 지나치게 사업 선정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갈등이 빚어지거나 지역·분야별로 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제 선택문제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 의견에 대한 발굴 기능도 취약하다. 시민 대표성과 형식·절차적 공정성을 두고 기존 지방의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둘 것인가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예산제의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등이 그동안 이뤄 온 여러 성과에서 이런 전망이 가능하다. 이제는 중앙정부까지 참여예산제를 정책에 본 따고 있다. 2012년부터 시행 중인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은 그동안 시민들의 참여가 점차 늘면서 많은 히트상품을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2015~2016년 2억원의 참여예산을 지원받아 만들어진 성북구 청년창업공간 도전숙이 대표적이다. ‘도전하는 사람들의 숙소’란 뜻의 도전숙은 1인 기업인과 창업준비생 등을 위한 직주혼합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참여예산에 힘입어 탄생한 도전숙은 현재 7호까지 공급 중이며, 국토교통부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에 연원을 두고 있다”며 “시민들이 결정해주신 사업이야말로 시민이 진짜 필요로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SOS어린이마을 인근에서 어린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이 사업은 관 주도형 사업에서 탈피해 주민이 직접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서울시에 신청하는 참여예산으로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박용준·조용훈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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