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30조원을 쏟아부어 기술혁신형 창업기업을 육성한다며 이른바 '제2 벤처붐' 계획을 지난달 2일 발표했다. 하지만 벤처붐을 향한 정부의 적극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벤처업계는 다소 시큰둥한 반응이다. 특히 오랜 숙제인 극심한 구인난을 해결할 대책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정부의 막대한 예산 투입이 효과를 보려면 업계가 고급 인재들을 수월하게 수혈할 수 있는 벤처창업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은 2015년 1월 3만개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3만3000여개를 넘어섰고, 벤처캐피탈 신규투자 또한 2010년부터 매년 늘어 지난해 2조원을 돌파하는 등 양적으로 팽창했다. 하지만 질적 성장 측면에서 미흡한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업계가 겪는 구인난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벤처기업당 평균 근로자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벤처기업은 벤처기업특별법에 따라 ▲벤처투자기업 ▲연구개발기업 ▲기술평가보증기업 등 3가지로 나뉘는데, 2011년 업체당 평균 근로자수 25.5명을 기록한 이후 2012·2013년 24.7명, 2014년 24.0명, 2015년 23.3명 등으로 조금씩 줄어들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펴낸 '국내 벤처기업의 발전 과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장균 수석연구위원은 "벤처기업에서 제품·시장 개발 등과 밀접한 R&D와 마케팅(영업) 부문의 인력부족률<부족인원수/(근무인력수+부족인원수)x100>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통신·방송서비스 등 ICT 관련 업종과 에너지·의료·정밀 업종이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영세한 창업초기기업을 의미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도 인력난을 겪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한 스타트업 기업 대표는 "창업 초기 개인 네트워크로 창업팀을 꾸린 후 회사 전반의 관리와 경영 등을 맡기기 위해 구인 공고로 인재를 찾는 노력을 하지만 믿고 맡길 인재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구인난은 벤처창업생태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벤처기업 생존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3년 생존율이 선진국보다 낮은, 30%를 밑도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저성장 기조에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상황에서 고급 인재들은 미래가 불투명한 벤처창업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 연구소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재들의 경우 낮은 연봉 수준 탓에 벤처창업 쪽으로 도전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창업생태계에는 주로 기술집약적인 인력들이 필요하지만 고급 인력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신림동에 간다"고 씁쓸함을 나타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 또한 "우리나라 구직자들이 벤처나 스타트업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본다"며 "대기업, 변호사·판사·의사 등 사(士)자 돌림, 공기업, 공무원 밑에 중소벤처기업이 있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쪽 업계에서 구인난이란 딜레마와도 같다"며 "공고를 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하는데, 막상 학업능력, 업무능력이 낮아 다른 곳에 취업하지 못해 찾아오는 경우"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회사 규모가 작으면 불안하니까 안 오려고 한다. 대기업 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본인 스펙이 떨어지면 공무원 준비하고, 이곳저곳 구인을 내면 기술 관련 회사라 지원을 많이 하지만 능력이 부족해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창업자 중 석박사급의 고학력 우수인력은 2014년 기준 5.3%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우수인력 유치를 위해 스톡옵션 비과세 혜택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기업은 사업 성숙기 이후 필요한 기술개발(R&D)·마케팅 등 부문의 인재 유치를 위해,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 지분을 주며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스톡옵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스톡옵션 비과세 2000만원 혜택은 인재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창업 2~3년 이후 우수 인력 유치가 중요하다. 외부 프로젝트도 따고 회사규모도 늘어나면 연구원, 개발자를 외부서 영입해야 하는데 연봉을 많이 줄 수 없는 현실에서 스톡옵션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라며 "최근 정부가 2006년 이후 사라졌던 스톡옵션에 대해 비과세 2000만원 혜택 방안을 발표했지만 1억원까지 증액해야 고급 인력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내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해결책으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내벤처 분사창업을 활성화해야 신설되는 법인이 많아지고 그 법인이 신규인력 모집할 때 수월하게 모집할 수 있고 많은 구직자를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사내벤처 활성화는) 현 정부서도 일자리 창출의 한 방안으로 제시한 정책으로 내년 시행을 위해 100억원을 확보한 상황"이라며 "사내창업팀을 발굴해서 회사에서 분사시키는 게 정부의 최종 목적이다. 분사하게 되면 분사 기업에서도 고용이 이뤄지고, 사내에서는 빠져나가니까 사람이 새로 수혈되면 양쪽에서 고용이 일어나게 된다. 기업혁신하면서 분사 성공 이후 일자리 창출까지 2가지 효과를 거두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창업생태계가 고도화된 가운데 벤처창업 성공 스토리가 지속 발굴돼야 고급 인력들이 벤처업계를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처기업 구인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업계에선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스톡옵션 비과세 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사내벤처 분사창업 등을 활성화해 생태계에 일자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7 리딩코리아 잡페스티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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