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연말 연시는 가장 큰 장사 대목으로 손꼽힌다. 엄동설한 추운 날씨에도 손님 맞을 생각에 한창 들떠 있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요즘 소상공인 업계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저성장 기조 속 연말연시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은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긴 하지만 이번엔 다른 걱정까지 겹쳤다. 내년부터 시행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은 16.4% 인상된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논의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시행돼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모두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미뤄온 과제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경우 내년 대폭 인상한다 해도 시간당 7530원으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근로시간의 경우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긴 나라가 한국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압축성장의 이면에 근로자들의 희생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더 이상 부인하거나 외면하기 힘들다.
새 정부는 이제는 소득주도 성장 중심의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가장 먼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같은 정책방향 설정의 기저에는 근로자의 소득이 늘고 여가시간이 늘어야 내수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사실 성장과 분배, 기업과 근로자 등의 관계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가 판단하는 것은 21세기 한국의 경우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문제를 두고, 여태껏 닭을 먼저 앞세웠으니 이제는 달걀을 우선순위에 두자고 이야기할 때가 됐다. 아니, 한참 지났다.
문제는 정책의 디테일이다.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정책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도입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정책당국은 잊지 말아야 한다. 행여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궁극적으로는 소상공인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다만 소상공인들은 내수 활성화의 단맛을 보기 전에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갑질, 보증금과 임대료 부담, 불공정거래 등으로 가뜩이나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부담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정책의 큰 방향이 맞다 하더라도 정부만큼은 모든 게 결국 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면 안된다. 혹시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소상공인들은 기다려야 할 미래보다 당장의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다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안정기
금 확보, 카드수수료 인하 등의 일부 보완책들이 마련됐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업종별.지역별 특성 고려 등 정책의 연착륙을 위해 논의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내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무엇보다도 여야의 협치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디테일 없이 큰 틀만 그려놓은 채 성장의 열매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설득하는 정책은 이제 졸업할 때가 됐다.
김나볏 중소벤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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