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살충제 계란으로 시작된 독성물질 시비가 닭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조치 결과를 보면 경악스럽다. 유기 화학물질을 남용한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 텐데, 닭과 계란이 무슨 죄라고 애꿎은 생물들을 폐기하고 살처분하는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 보건 당국은 빙산의 일각만 보는 듯하다. "하루에 계란을 백몇개씩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상식을 무시한 발표다. 계란으로 국수를 만들어 주식으로 먹지 않는 한 어떻게 매일 백여개의 계란을 먹을 수 있을까. 그 많은 계란을 먹어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화학물질이 안고 있는 한계는 미확인 물질들 때문이다. DDT의 치명적 독성과 난분해성을 모르던 한 세대 이전에는 배춧잎에도 DDT를 뿌리고 이를 잡겠다며 옷 솔기에도 덩어리째 뿌린 후 잠을 잤다. 그때는 몰라서 그랬다. 그런데 아직 닭 사태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여성 생리대가 심판대에 올랐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등장할까.
환경적폐 가운데 농약 중독과 아낙네들의 소문 없는 죽음도 빙산의 일각에 속한다. 여러 농촌에서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 비닐하우스 농가들이 몰래 농약을 뿌려왔다는 사실이 주변으로 새어 나갈까 밀폐된 온실에서 농약을 뿌렸다. 농약을 뿌리고 문을 열어놓으면 냄새가 퍼지기 때문에 농약을 뿌린 후에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다. 남성들은 농약을 뿌린 후에 대부분 외출했지만 문제는 온실에 남아서 계속 잔업을 한 여성들이다. 잔류 농약에 장기간 노출된 농가 여성들은 시름시름 않다가 죽어갔다. 중간에 아픔을 호소해서 병원에 가기도 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체계적 역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서는 농약 중독이 밝혀지기 어렵다. 밝혀지더라도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온실에 맹독성 농약을 뿌리고 그 안에서 작업하도록 방치한 행위는 인식 있는 과실범임에도 물증이 없다. 지금도 농촌에는 농약 중독으로 소문 없이 죽어가는 여성들이 있다. 농촌에서는 여성이 오래 산다는 통념을 깨고 남성이 더 오래 생존해 재혼하는 일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 유럽에서부터 촉발된 계란사태는 오래된 적폐였고 예고된 재앙이었다. 서양에서든 동양에서든 죽을 때까지 A4용지 한장 크기의 좁은 닭장에 사는 닭이 건강한 계란을 낳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른 데에는 의외로 친환경인증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친환경인증을 받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책이 많아서 사기꾼들이 모여든다. 이를테면 생산물 품질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퇴직하면서 민간의 인증기관을 만들 수 있다. 이쪽으로 술과 돈 봉투가 오간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파다했다. 원천적으로 현장검증이 불가능하다. 품질관리 일지를 한 사람이 작성하고 다른 이들이 복사해서 쓰는 일들도 벌어진다. 한때 환경영향평가 실무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시골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이번 사태 후 정부와 정치권이 '농피아' 척결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당국이 어디까지 어떻게 척결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맹독성 농약이나 어병약(魚病藥)이 왜 이렇게 만연하는가도 따져볼 일이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정부가 금지한 맹독성 농약과 어병약들이 태연히 판매된다. 농약보다 더 심각하며 말레이시아나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금지된 제초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허가된 일도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맹독성 제초제 목록을 B2급 100가지만 공개한다. 더 독한 B1급이나 A급은 일반인들이 정보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경북 상주와 전남 진도 등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제초제를 뿌리다가 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농약과 제조제에 중독되더라도 젊을 때는 그나마 견딜 만한데 나이가 들면 내성이 약해져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농약과 제초제 무풍지대가 초래된 것은 종자와 함께 이를 제조·유통하는 회사들이 100%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뜻 있는 활동가들이 다국적 기업에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항의라도 할라치면 "당신들, 뒷감당 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요즘은 투약이 기계로 이루어져 독성물질들이 전보다 쉽게 많이 살포된다. 뿌리는 사람들도 독성물질의 무서움을 망각한다. 혹 알더라도 서로 쉬쉬한다. 폭로라도 할라치면 "생산물 값이 떨어진다"면서 오히려 주민들이 더 싫어한다고 한다. 친환경인증제와 함께 청산되어야 할 오래된 적폐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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