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침내 검찰에 출석하면서 재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핵심은 뇌물죄다. 뇌물죄 혐의 입증 여부에 따라 공여자인 삼성, SK, 롯데, CJ 등 대기업들의 운명도 갈린다.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의 줄기소가 이어질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13개 혐의 중 뇌물죄 입증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게 앞선 특검의 자신이었다. 가장 긴장한 쪽은 삼성이다. 특검은 지난달 이 부회장을 433억원의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거래가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이 부회장 측은 공소장에 적시된 대가성 부분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날 진술이 중요한 대목이다.
특검에서 사건을 인계 받은 검찰은 삼성 외 SK와 롯데 등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SK와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각각 111억원, 45억원을 출연한 데다, 최순실씨 측과 추가 출연을 논의하거나 70억원을 줬다가 돌려받았다. 배경에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비롯해 SK와 롯데의 면세점 사업권 재취득 등 특혜가 있었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재단에 13억원을 출연한 CJ도 이재현 회장의 사면 건에 대한 대가성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그룹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모금 분담 비율에 따라 돈을 냈을 뿐, 개별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검찰의 칼이 어디를 향할지 가늠할 수 없게 되자 불안감도 극대화했다. A그룹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모든 혐의를 부인할 것 같다"며 "검찰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는지가 관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축으로 함께 엮여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도 하기 어렵다"며 "(상황을)예의주시하며 재판에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는 "특검 종료로 한시름 놨는데, 검찰도 명예회복을 벼렸던 것 같다"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특히 "총수가 (출국금지로) 발이 묶이고, 기업 이미지와 대외 신인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사건이 마무리되었음 한다"고 바랐다. C그룹 관계자도 “지난해부터 6개월 넘게 사건을 끌어오고 있다. 재계가 많이 움츠러든 상황"이라며 “의혹의 정점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만큼, 낱낱이 밝혀 재계를 옭아맸던 혐의들도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총수 공백에 처한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와 대관업무 조직 폐지 등 논란을 수습하는 차원의 대책만 있었을 뿐, 인사와 조직개편 등은 장기 표류하고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의 책임을 묻는 문책성 인사만 있었을 뿐이다. 경영의 밑그림을 그리고 계열사간 현안을 조정할 컨트롤타워도 없어 현상유지에 방점을 찍고 눈치보기만 짙어지는 양상이다. 각사별 자율경영이라는 사상 초유의 실험은 본 궤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 측은 "혼선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 부회장의 공백이 크다"고 말했다.
SK는 최 회장이 여전히 출국금지 상태로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중국 보아오포럼 참석도 어렵게 됐다.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표방해온 SK는 사드 보복으로 중국에서 현지 파트너 합작사업, M&A 투자 등 여러 건이 차질을 빚고 있음에도 최 회장이 직접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다. 롯데는 검찰 수사와 사드 후폭풍, 경영비리 혐의 재판 등 악재가 겹쳤다. 신 회장 역시 장기간 출국금지 조치로 발이 묶였다. 지난달 가까스로 조직개편 및 인사를 단행했으나 호텔롯데 상장이 지연되는 등 후속조치에 차질을 빚고 있다. CJ도 당초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조기 복귀할 것이란 안팎의 예상과 달리, 유전병 치료차 기약 없는 미국행에 올랐다. 이 회장의 복귀로 대규모 M&A 투자 등 사업 보폭이 커질 것이란 기대도 무너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일 특검에서 수사기록을 인계받고, 10일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박 전 대통령의 소환을 통보한 뒤 관련 대기업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13일 면세점 인허가 담당 관세청 직원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고, 16일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영태 전 커뮤니케이션위원장(부회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등 SK 전·현직 최고위 임원 3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18일엔 최 회장도 참고인으로 불러들였다. 19일에는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도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이후 이들의 신병처리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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