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육아휴직 1년 하고 바로 사표를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실업급여를 타먹으려고 하는데요. 거의 2년을 돈 받으면서 놀고 싶은데 혹시 육아휴직 후 퇴직하면 회사에서 돈 돌려달라고 하는 건 아닌가요? 만약에 상관없으면 육아휴직은 퇴직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공짜특혜네요.”
온라인 육아카페, 포털사이트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의글이다. 육아휴직제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물론, 편법 활용사례가 일종의 ‘꿀팁’처럼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육아휴직·실업급여 이중 수급이다. 육아휴직기간이 끝나자마자 퇴사하고 이 과정에서 권고사직 처리해 실업급여까지 받는 것이다. 휴직은 복직을 전제로 한 제도이기 때문에 육아휴직 종료 직후 퇴사는 위법은 아닐지라도 제도의 취지에는 어긋난다. 특히 자발적 이직을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으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육아휴직이 보장된 공공부문에서는 인사 조치를 피하기 위한 휴직이 빈번하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휴직을 안 쓰고 있다가 지방 발령이 나니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 직원이 가기로 예정돼 있던 지사는 한 명이 모자란 상태로 1년을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육아휴직은 ‘육아를 위한 휴직’보다는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의 특권’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취지에 어긋난 제도 활용도 대개 이런 인식에서 이어진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출산휴가 중인 강모씨(29)는 “우리 회사에선 입사 3년째 되는 해에 인사평가가 있다. 그 평가가 부담이 커 평가시기에 휴직을 내는 직원들이 많다”며 “나도 평가시기에 맞춰 임신계획을 세웠다. 다들 그렇게 하니 이게 잘못됐다거나 하는 건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학업이나 여행, 기타 자기계발 등의 사유로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편법 육아휴직 활용의 불똥은 엉뚱하게도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과 취업준비 여성들에게 튄다. 대체인력제도가 활성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퇴사를 전제로 육아휴직을 신청하거나 육아 외 목적으로 휴직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 기업들은 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이는 육아휴직에 비우호적인 기업 분위기, 기혼여성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리뷰 2월호 ‘일·가정 양립지원제도의 노동시장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육아휴직 이용 노동자가 확실하게 직장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아 대체인력 채용 등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복귀 시점에 임박해서 일방적으로 퇴사를 알려오거나 복귀 후 얼마 안 돼 퇴사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육아휴직 후 미복귀 노동자에 대한 휴직급여 지급 취소를 주장하는 기업들까지 있다.
특히 육아휴직 후 직장 미복귀, 육아 외 목적의 육아휴직 활용은 정부가 육아휴직 사후지급금(휴직급여의 25%를 복귀 6개월 후 일시급으로 지급), 근속기간 1년 미만 육아휴직 제한 등 비정규직에 차별적인 제도들은 폐지하지 못 하는 결정적 사유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요구처럼 육아휴직 사유를 제한하거나 직장 복귀를 강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또 다른 규제를 만들면 그 규제가 휴직급여 사후지급금처럼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도 전체 여성 노동자 대비 30%대에 불과한 육아휴직률을 더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육아휴직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 부작용을 이유로 규제를 만들 순 없다”며 “결국 모럴 해저드(도덕적 헤이)의 문젠데, 모든 출산여성이 육아휴직을 당연히 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이런 일부의 문제는 육아휴직의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에선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도 육아휴직을 책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정부 차원에서도 대체인력 활성화 등 정책적인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퇴사를 전제로 육아휴직을 신청하거나 육아 외 목적으로 휴직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 기업들은 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이는 육아휴직에 비우호적인 기업 분위기, 기혼여성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림/뉴스토마토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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