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연초부터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막이 오르면서 보호무역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유럽 극우정당의 득세 가능성은 유럽연합(EU) 와해에 대한 불안을 싹틔우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경기 둔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한계 등도 세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로 거론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에르베 로렌치와 미카엘 베레비의 ‘폭력적인 세계 경제(미래의 창)’는 바로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분석하는 다른 석학들의 책과 나란히 출간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본질적인 위기요인을 더듬는 시각만큼은 다른 책에 비해 조금 특별하다. 두 저자는 많은 이들이 지목하는 트럼프나 유럽 등의 이슈 대신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고 믿어온 요인이나 자세히 보지 않았던 제약들에 주목하면서 불확실성의 근원을 파헤쳐 나간다.
서두에서부터 두 저자가 향후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꼽는 것은 기술혁신의 둔화다. 이들에 따르면 2차 산업혁명 이후 인터넷을 빼면 최근까지 이렇다 할 기술적 ‘혁명’는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188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에 갖춰진 자동차, 텔레비전 등의 혜택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그나마 혁신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인터넷도 산업혁명기 만큼의 대량 생산,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내진 못했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고령화로 기술 투자가 감소하고 있고 신흥국은 선두 국가의 기술을 복제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이러한 흐름의 지속이 향후 4차 산업혁명에까지 영향을 줘 세계의 성장 둔화와 직결될 수 있다고 본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도 다른 제약 요인으로 지목한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인구의 11.7%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60세 이상 노년층은 오는 2050년까지 21.1%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연금과 건강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스레 연금수령자는 증가하고 투자 부문의 위험 회피 현상, 기술 혁신의 부재도 잇따르게 된다. 더불어 일을 하는 노년층 증가에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도 동반된다.
두 저자는 “고령화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쟁점화시키고 있지만 현재 범지구적으로는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서구, 동아시아, 라틴아프리카를 필두로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될 것이고 이는 차후 세대간의 분열과 전쟁에 대한 문제로도 번질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이외에도 지금 당장 성장에 문제가 되고 있는 제약 요인으로 중산층 집단이 사라지면서 심화된 사회적 불평등, 희소 자원의 배분 문제, 선진국의 산업이 신흥국으로 이전되면서 생겨난 산업공동화 현상,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그림자 금융 등을 꼽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약 요인들을 다스릴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이들은 우선 혁신 부재에 따른 대안으로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토양 구축에 힘쓸 것을 주문한다. R&D나 교육 등의 투자에 초점을 맞춰 문화적 가치가 성장의 중심축이 될 수 있게 유도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 인구의 이동을 막는 장벽 철거도 제안한다. 국경을 열고 외국의 젊은 인구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환경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은 젊은층의 수혈로 투자에 대한 위험회피, 기술 혁신의 부재 등을 해결할 수 있고 반대로 청년들은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활동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나 노동 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는 독일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남부 유럽의 인구는 몇 해 동안 독일이 제공하는 노동기회에 도움을 받아왔다. 요약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동일한 경제적, 문화적 지역 내에서 노동자의 이동에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251쪽)
또 희소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 세금’ 도입도 주장한다. 물 부족 등으로 인류의 생존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희소 자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세계 공동의 자금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이외에도 연금수급자들의 적극적인 금융투자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제도의 확대, 환율전쟁의 위험에 대비해 고정환율제 성격이 강한 브레튼 우즈 체제로의 복귀 등도 고려해 볼만한 대안으로 거론한다.
로렌치는 “최근 세계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위기가 보여준 혹독한 잔인성은 정치활동까지 마비시키고 있다”며 “책에서 제시한 제약들 역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든 압력이 커져 세계 경제의 붕괴를 일으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의 해법은 미래에 펼쳐질 거시경제의 핵심 요소들을 이해한 상태에서 제시했기에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우리는 세계 경제의 궤적을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폭력적인 세계경제. 사진/미래의창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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