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는 알려진 것과 달리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4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때(2014년 9월)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따로 불러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래서 이듬해 3월 박상진 사장의 승마협회장 취임과 함께 회장사를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해 7월25일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이뤄진 독대에서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 지원이 미진하다.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강한 어조의 압박이 있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VIP(대통령) 요청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3차 독대는 지난해 2월 중순 이뤄졌으며, 최씨의 동계스포츠센터에 대한 지원 요청이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2차 독대 직후 미래전략실 회의를 긴급 소집, 승마협회 지원 현황을 점검했다. 그 결과, 승마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이영국 상무와 총무이사였던 권오택 부장을 경질하는 한편 황성수 전무를 협회 부회장에 임명했다. 또 협회장이었던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을 급히 독일로 보내 최씨 요청을 수용케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달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씨 모녀 지원과 관련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 대목이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앞선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 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합병 안건을 다룬 주총이 7월17일로, 그보다 앞선 10일에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 의결했다"며 "독대는 25일 이뤄졌다. 합병 완료 시점이다. 대가성을 따지려면 앞뒤 맥락이 맞아야 하는데 선후 관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특검에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했다. 합병과 승마 지원은 무관하다고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최씨 모녀 지원에 대해서는 사실을 시인하고 잘못을 인정하되, 뇌물공여죄 입증의 핵심이 될 대가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인하는 논리다.
삼성의 이 같은 입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된 이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대통령의 지시"로 모든 혐의를 비켜갔다. 박 대통령은 이를 통치행위로 치부, 탄핵 요건에 부합하지 않음을 강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사태에 연루된 모든 이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점도 공통점이다. 삼성 역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라는 대가성에 대해서만큼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검이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죄 혐의 입증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삼성의 이 같은 주장은 특검 수사를 원점에서부터 흔들 묘수로 보인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특검이 언론을 통해 혐의 내용을 하나씩 흘리며 삼성의 대응 논리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은 모든 법리적 검토를 마쳤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며 "고난이도의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검이 이를 다시 받아칠 숨겨놓은 카드가 있느냐에 따라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1차 독대시 회장사를 맡아달라는 요청 외에 '승마 유망주를 발굴해 좋은 말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도 지원해 달라'는 주문이 있었고, 2차 독대 때 같은 내용의 채근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인 이 부회장이 대통령이 말하는 바를 몰랐을 리 없다"는 특검 관계자 말도 전해졌다. 또 삼성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대 당시 삼성 승계 관련 내용이 적힌 대통령 말씀자료도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재계 안팎에서도 박 대통령과의 2차 독대 후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준비를 서두르는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월 삼성전자가 들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을 인수했다.
삼성의 주장이 관철되더라도 위증죄는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 부회장은 앞서 국회 청문회에서 "정유라에게 지원한다는 것을 누구에게 보고받았느냐"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나중에 문제가 되고 나서 알았다"고 답했다. 지원 여부를 사전에 알았느냐는 추궁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말해 위증죄 혐의가 짙다. 또 박상진 사장의 독일 출장과 관련해서도 "보고 못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두 번째 독대에서 승마협회 지원을 강하게 요청받고 나서야 현황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삼성 역시 "위증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삼성 관계자는 "수사결과와 배치돼야 위증"이라며 "위증 여부는 수사결과가 나오고 국회가 위증이라고 고발을 하면 그때 따질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국정조사특위는 즉각 위증죄로 이재용 증인을 고발해야 한다"며 삼성을 압박했다.
한편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상황에서 특검이 과거와 같이 삼성 봐주기로 일관할 경우 직면할 국민적 비난이 만만치 않은 데다, 특검의 의지도 상당하다는 것이 근거다. 삼성 고위관계자도 "기소까지는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검은 이번주 내로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사장 등을 소환할 방침이다. 이 부회장도 한 차례 이상은 특검과 마주해야 한다. 과거 현대차, SK 등과의 악연으로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박영수 특검이 수사를 지휘한다는 점도 삼성으로서는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