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서울시 청년활동 지원사업(청년수당)은 평가 여부를 떠나 박원순시장의 대표 청년정책으로 손꼽힌다. 2배로 늘어난 내년도 청년수당 예산에서도 박 시장의 추진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서울시 청년정책은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만들어내 의미가 더 크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가 그 중심이다.
서울시 청정넷은 서울 거주 19~39세 청년들이 참여한 청년 정책 거버넌스(민관협의체)다. 2013년 결성됐다. 청년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과 방향을 시에 제안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이들의 제안은 서울시 공무원들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실제 정책으로 추진된다. 청년수당이 그 대표적 성과다.
청정넷 3기 활동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분과별 ‘모임지기’들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지난 1년간 서울시 청년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몸소 느낀 것들을 함께 공유했다. 권지웅(29) 청정넷 운영위원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장애인분과 홍서윤(30·여)·박원진(34)씨, 자전거 분과 오영열(25)씨, 일자리 분과 이수호(29)씨, 주거 분과 임경지(29·여)씨,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등이 함께했다. 3시간 가량 치열하게 진행된 좌담회를 소개한다. 존칭은 생략한다.(편집자 주)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회원들이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장애인 관광정책 서로 미루던 것 기억 남아"
사회자 : 올해 청년의회를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나요. 오늘 이 자리에는 지난 1년간 몸으로 부딪히며 각 분과별 청년정책을 이끌어오신 분들을 모셨어요.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홍서윤 :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첫 간담회 자리에서 서울시 장애인 자립지원과와 관광정책과가 우리가 제안한 장애인 관광정책을 서로 미뤘던 거에요. 본인들 사업이 아니라고. 그때 처음으로 공무원들의 경직성을 체감했어요. 사업 자체가 생소하니까 서로 안 하려고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까지 장애인 관련 정책은 대부분 장애인복지과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유럽의 경우 장애인 정책이 모든 정책에 스며들어있어요. 저는 관광정책에 있어 장애인을 위한 별도 정책이 마련된다면 앞으로는 노인, 여성 등 다른 대상들도 들어가기 쉬워진다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시작하는 정책이긴 하지만 청년으로만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또 다른 교차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장애인 관광 관련 단체들도 방문하고 그분들이 가진 고충을 들었고, 꼭 시에 전달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아요.
사회자 : 담당과가 정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장애인분들 입장에서 의미 있는 일이네요.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오영열: 자전거 정책을 개선해보려고 했어요. 우리나라 자전거 사고율이 굉장히 높은데, 여러 정책 중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라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제대로 된 자전거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지난 7월 서울시에 자전거 정책과도 신설되고 하면서 화기애애하고 분위기가 좋았어요. 근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느낀 건 담당 공무원분들이 자전거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거예요. 자전거 타보셨냐고 물어보니깐 분당 율동공원에서 한번 돌아본 게 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 번은 담당 공무원분들이 만나자고 하셔서 찾아갔는데, 정작 자전거 교육프로그램 얘기는 10프로 정도밖에 안 하고, 올해 시에서 자전거 축제를 진행하는데 같이 하자는 거예요. 지역마다 다른 수신호를 통일하자고 제안도 했었는데, 자전거정책과에서는 자전거 단체나 연맹에 문의했는데, 본인들 것을 사용하겠다면서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시 차원에서 수신호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관이 주도하면 민간에서 지원하고, 도우라는 식의 느낌을 많이 받았아요. 실제로 자전거분야 전문가분들을 만나도 ‘서울시 공무원들이랑 같이 뭔가를 하는 건 손을 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자전거 단체를 많이 아는데 서울시랑 자전거 축제를 준비하면서 보니깐 참여한 단체가 우리밖에 없더라고요. 그런 말을 한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죠.
"일자리 정책 너무 많은 것도 문제"
이수호: 노동존중 특별시라는 말처럼 일자리 분야는 정책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던 거 같아요. 이미 기존에 있던 걸 숙지하는데도 오래 걸렸어요. 사실 청년이 취업을 하는 과정은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데, 마치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러던 중에 한 취업준비생이 서울시 무료 정장 대여 서비스인 ‘취업 날개 서비스’가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알아보니깐 한 시중은행의 일시적인 기부로 진행됐던 거더라고요. 근데 실물지원을 할 때 서울시 이름을 걸고 하면 선거법에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느낀 건 관에서 어떤 정책을 진행하면 어떤 상자가 있어서 상자 안에 정책이 들어가도록 우리가 맞춰야 한다는 거에요. 고민을 하다 서울시의회 이신애 의원님 도움을 받아 시 조례를 일부 개정했어요. 지원 품목을 조례에 명시해 집행하면 위법이 아닌 거예요. 지난달 조례가 통과돼서 내년에 정장 지원사업비로 예산을 1억원가량을 확보했어요.
임경지: 저는 관료제의 가장 큰 장점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해요. 담당자가 바뀌어도 시스템이 유지되는 장점. 근데 서울시 청년정책은 인수인계가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또 전문가도 아닌 나이 어린 청년들이 찾아 오니깐 정책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요. 이거는 원래 이런 거고 이래서 안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요. 저는 담당 실무자들이 저랑 별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아요. 사실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서울시 청년 주거정책이 있는지 잘 몰라요. 근데 시에서는 어떤 어떤 주거 정책은 지원율이 높지 않다면서 청년들이 필요가 없어하는 거 같다고 말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청년들이 그런 게 존재하는지 모르거나 홍보가 안돼서 신청을 안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 분과는 올해 SH공사 홈페이지를 개선했어요. 서울시, 자치구, SH공사에 개별적으로 흩어져있는 주거정책을 SH공사 홈페이지로 모으는 작업을 시도했어요.
"서울시 청년정책 인수인계 잘 안 돼"
사회자: 주거의 경우처럼 시 공무원들이 왜 청년을 만나야 돼는지부터 시작해서 거버넌스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네요. 특히 올해 청년의회는 서울시의회와의 거버넌스를 통한 성과도 있었어요.
임경지: 새누리당 김현아 의원과 2시간 정도 간담회를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았아요. 우선 절대 말을 끊지 않으세요. 저도 충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고요. 근데 서울시 공무원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너무 방어적인 태도가 나오니깐 단 한 번도 제가 끝까지 말을 못했어요. 나는 이런 고민 때문에 이 정책을 개선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저도 늘 위축되고 오히려 이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한 거 같아요. 시간과 분위기가 충분히 들어주는 거 같지가 않아요. 다 아신대요. 제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거는 이래서 안된다는 반응이에요. 나중에는 서로 다른 주체라는 생각에서 방어적 태도가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하니깐 이해되더라고요.
서복경 교수: 여러분들이 경험한 일련의 과정은 지극히 전통적인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이에요. 관료조직의 특성은 할당받은 예산을 써야 한다는 점과 결과물이 멋져야 하고, 언론보도 같은 가시적인 성과물을 남기고 싶어해요. 지방정부가 작동한 게 20년도 채 안돼요. 경험은 굉장히 짧은데 잘하고는 싶고 제도나 관행은 옛날 그대로에요. 근데 새로운 사업은 계속 만들어져요. 여러분이 했던 일들은 지방정부조직이 시민의 정책수요에 반응하게 끔 만드는 과정이에요. 여러분 개개인은 관료조직과 부딪히는 과정이 때로는 모욕적이지만 결국은 관료조직도 여러분 지속적인 요구에 부딪히고 깎이면서 변하는 거에요.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시의회와의 거버넌스 매우 성공적"
홍서윤: 이미 경직된 관료조직을 크게 바꿀 수 없다면 올해 서울시의회와의 거버넌스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던거 같아요. 시에서는 일개 단체의 맴버나 청년이 얘기하면 약간 민원인 같은 대접을 해요. 제가 민원인 대접을 받는 건 상관없어요. 중요한건 나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하는거잖아요. 현재 나의 사회적 위치로 해결이 안되는데, 시의회와의 거버넌스로 해결 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좋았어요. 그 과정에서 시 의원님들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걸 보면서 아마 많이 느끼신 거 같아요.
사회자: 올해 특징적인 건 청년의회를 서울 시의회와 공동 개최했고, 지난해 서울 청년발전특별위원회도 꾸려졌어요. 그러면서 시의원님들을 만나는 경우도 많았어요. 실제로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 저희가 질의를 작성해서 보내고 시의원님이 질의를 하기도 했잖아요.
오영열: 시에서 저희랑 대화도 없이 청년 자전거 교육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다는 보고서를 썼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행정사무감사 기간에 서울시의회 성중기 의원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행정사무감사 때 관련 질의를 하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다음날 담당 공무원분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리고 실제로 담당자분들이 직접 찾아와서 이런 고민이 있으니 해결 방안을 같이 찾아보자고 하더라고요. 서울시 공무원들의 태도가 시의원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바뀔 수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아팠죠.
"물고기 잡을 청년 생각은 왜 안 물어보나"
이수호: 예전에 청년수당을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때아닌 ‘물고기 논쟁’이 불거졌을 때, 왜 물고기 잡을 청년의 의사는 묻지 않는지 답답했어요. 시의회와의 거버넌스는 우리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통로 중 하나였어요. 지난 청년의회에서 느낀 건 박원순 시장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기분이에요. 청년들이 논의해서 모아 온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약간 속 시원한 것도 있어요.
임경지: 저는 이번에 시의회와 호흡을 맞추면서 대의제가 잘 작동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어요. 어쨌든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의원분들 말을 듣잖아요.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를 존중하고 시의원을 무시하는 게 더 이상한 거 같아요. 나한테는 한 번도 쩔쩔매지 않던 담당자들이 시의회에서 쩔쩔매는 걸 보면서 놀라기도 했어요. 적어도 저랑 같이 경험한 친구들에게 있어서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거버넌스 수단을 쓴 거 같아요. 다양한 문제 해결이 방식이 있어도 의회가 시민을 대표해야 하는 거 같아요. 나이가 어리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되는 친구들에게 서울시의회와의 거버넌스는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아요.
대의제 작동 체험은 큰 성과
사회자: 청년의회나 청정넷의 경험은 향후에 다른 지방 정부가 변화하려고 할 때 어느 정도 참고가 될 거 같아요. 여러분들은 청년의 영역에서 번역자 같은 역할을 하신 거 같아요.
서복경: 결국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공공의 재정과 기구가 실제로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도록 만들도록 기여하는 거예요. 공적 제도를 수단이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사회적 약자들이 유일하게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자원은 시민의 머리수예요. 시민에게는 다양한 이해와 다양한 요구가 있어요. 우리는 각각의 요구를 토대로 공적 제도가 시민을 위해 작동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해요.
자전거 분과 오영열씨가 청년 자전거 교육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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