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35명에 달하는 새누리당 비박(박근혜)계의 21일 집단 탈당결정으로 정국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특히 지난 1990년 ‘3당 합당’ 이후 26년 만의 교섭단체 4당 체제 부활이 유력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됐던 국내 정치지형도 역시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보수신당(가칭) 대변인격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탈당파 의원 회동 브리핑을 갖고 “가짜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어 “친박(박근혜)·친문(문재인)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평소에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를 해왔고, 그래서 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얘기해왔다”며 “새누리당 안에서는 보수 혁명을 통한 새로운 정치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정치는 헌법 유린으로 이어지면서 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을 초래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사당으로 전락해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을 실망시켰다”고 일침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목숨 걸고 싸우며 막아야 했지만,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그 점에 대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엎드려서 사죄한다”고 말했다.
보수신당이 자신들을 ‘진짜 보수’로, 새누리당을 ‘가짜보수’, ‘박 대통령의 사당’으로 규정지은 것은 새누리당과 각을 세우고 보수진영 새판짜기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친문·친박을 패권주의로 비판한 대목은 자신들이 소위 제3지대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보수신당의 등장은 단순한 새로운 보수세력의 등장을 넘어 지난 26년간 대한민국 정치사를 주도해온 정치세력의 역할 축소 및 1990년대 이후 지속된 한국 정치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새누리당의 전신 격인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킨 26년 전 3당 합당은 ‘보수대연합’을 명분으로 했지만 그 실상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안정적인 정권유지를 위해 군사정권 출신 민주정의당(대구·경북)과 신민주공화당(충청), 민주화 세력 통일민주당(부산·경남)이 힘을 합쳐 민주화 세력 평화민주당(호남)을 고립시키는 구도였다.
정책이나 이념보다 지역대결로 치달아 호남고립은 심화됐고 민주세력과 독재세력의 투쟁은 진보와 보수 세력의 대립으로 치환됐다. 여당은 보다 오른쪽으로, 야당은 보다 왼쪽으로 향하면서 진영논리나 색깔론은 심화됐다. 3당 합당의 부작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분당되고 보수신당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도가 타파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보수신당은 기존의 각 정당과 여러 측면에서 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새누리당과는 보수지지층을 두고 주도권 경쟁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는 수도권과 영남이라는 지역에서 이념과 정책 정면대결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의당과는 원내 제3당의 자리, 제3지대의 주도권을 두고 신경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그 차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새누리당내 충청지역 의원들의 선택에도 주목된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충청지역 정치인들은 일단 분당사태를 관망하고 있지만, 내년 초 귀국하는 반 총장의 행보에 따라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국민의 여론지형이 6월항쟁 이후와 비슷해졌다. 민주와 반민주,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뉜 것 같다. 새누리당 분당사태 역시 그 파생물”이라며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일시적 이합집산 가능성도 있지만, 3당 합당 체제를 극복할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 의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탈당 관련 모임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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