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는 총수들은 거수해달라는 요청에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허창수 GS 회장 등이 손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삼성전자가 비덱스포츠와 컨설팅 계약 체결했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네.
(도종환)37억원 네차례 송금한 것 맞죠?
(이재용)네.
(도종환)최순실씨 아셨나요?
(이재용)전 몰랐습니다.
(도종환)몰랐어요?
(이재용)언제 알게 됐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도종환)어떤 사람인지 알았나요?
(이재용)저는 몰랐습니다.
(도종환)비덱스포츠가 최순실씨 회사인데 알았나요?
(이재용)문제 되고 나서 얘기 들었습니다.
(도종환)이 돈을 주택과 호텔 구입 자금에 사용했다는데 아세요?
(이재용)나중에 들었습니다.
(도종환)알면서 최순실 지원 우회 통로로 이용한 것 아닙니까?
(이재용)나중에 들어보니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도종환)어떤 사정이요?
(이재용)지금 이게 여러 분들이 연루돼 있고, 또 저는 제가 직접 연루된 일이 아니라서 제가 말씀 잘못 드리면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서요.
재벌 총수들에게도 ‘최순실’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원들의 유도심문이 이어졌지만 이리저리 피해갔다. 2014년 일명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대한민국 서열 1위가 최순실’이란 대대적 보도까지 있었는데 신문도 안 보냐는 추궁도 이어졌다. 여기엔 “제 부덕의 소치”라며 답을 피했다. 사전에 총수들은 법무팀 자문을 얻어 예상 질문과 답변을 충분히 숙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행연습도 수차례 가졌으며, 답변 외에 감정 조절도 숙지했다. 때문에, 법적 문제가 걸린 질문엔 ‘동문서답’의 회피성 답변만 되풀이했다. 뇌물죄, 정경유착 진상규명의 기치를 걸었던 청문회는 그렇게 소득이 없었다.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대가성은 없었다고 하나같이 부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금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고 나서 챙겨봤다”며 “실무선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대가성을 가지고 출연한 바 없고, 제 결정도 아니었다”고 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인정할 경우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어 충분히 예상됐던 답변이다. 일각에선 그래도 ‘촛불민심’과 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의식해 ‘양심고백’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불미스런 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며 공허한 사과만 이어졌다.
재단 출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죄 혐의를 입증할 핵심이자, 향후 탄핵정국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부는 모금의 강제성을 시인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GS그룹) 회장도 “청와대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이라고 했다. 5공 청문회 당시 “시류에 편승했다”는 정주영 현대 회장의 발언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대통령 독대 당시 대화내용에 모금 강요가 있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향후 혐의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 구 회장은 “(대통령이)한류, 스포츠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며 “정부에서 뭔가를 추진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협조해달라는 말씀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도 “문화융성, 스포츠발전을 위해 기업들도 열심히 지원을 해주는 게 경제발전,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지원을 아낌없이 해달라는 말은 있었다”고 했다. 강압 여부에 대해선 “당시에 정확히 재단이라든지 출연이라든지 이런 얘기는 안 나왔다"고 부인했다.
대가성이 없어도 뇌물죄 적용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뇌물성을 인정하는 데에 청탁의 유무나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행위만으로도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특검은 대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낸 과정과 그 속에서 대통령 역할 등을 파헤쳐 뇌물죄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다.
대통령의 ‘강요미수’ 혐의가 적용될 만한 의혹에 대해서는 청문회 증언이 있었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압력에 대해 “사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단,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고 업무에 지쳐 있어 사의했다”고 했다. 손경식 CJ 회장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말씀’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있었음을 증언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상 ‘삼성 청문회’라 해도 될 정도로 질문은 삼성에 쏠렸다. 삼성은 재단 출연 외에도 최씨 모녀 승마지원 등의 대가성 의혹에 시달렸다. 삼성물산 합병 이전 국민연금공단의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이 부회장을 만나 합병비율 조정을 요청했던 사실도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비율이 저희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고 해명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국민 돈이 승계에 이용됐다”며 공세를 높였으나 승계와도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약속 대신 “삼성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답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던 청문회 목표는 구호에 그쳤다. 재단 모금 창구 역할을 한 전경련 해체 요구가 지속 제기됐지만, 그간 입을 닫고 있던 허창수 회장은 이날도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며 비켜갔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총수들에게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분이 있냐고 하자, 구본무·정몽구·신동빈·김승연·조양호·허창수 회장이 손을 들었다. 구 회장은 “전경련은 앞으로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각 기업의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 때도 돈 내라고 하면 내겠냐”는 질문에는 “국회에서 입법해 막아 달라”고 했다. 삼성과 SK, LG는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전경련 활동도 않겠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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