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쉬워지고, 역사는 단조로워진다
오늘 부는 바람은
2016-11-16 18:37:04 2016-11-16 18:37:04
지금까지는 역사를 배웠다. 중학교에 올라가 처음 받아 든 역사 교과서의 첫 장에는, 역사의 정의가 쓰여 있었다. 우리 학교의 교과서에 따르면 역사는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과거의 사실’로,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과거의 사실을 역사라고 하는 관점이었다. 두 번째는 ‘서술된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서술한 내용을 역사라고 보았다.
 
이렇게 역사의 정의를 배우고 나면, 이런 문제가 중간고사에 나오곤 했다.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1)과거의 사실로서의 역사 2)기록된 사실로서의 역사로 구분하시오.’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는 1567~1608년에 재위하였다.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정여립 사건과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이후 조선사회가 무너져 내려 조선시대 왕 중 고종과 함께 무능한 왕으로 일컬어진다.’ 답을 쓸 수 있겠는지?
 
그 때 역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엄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본인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셔서, 별명이 ‘효자손’ 이었다. 효자손 하나를 늘 들고 다니시며 “역사 잘하는 놈들이 효자다. 역사 잘하는 애들이 다른 과목도 다 잘 하는 거야.” 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생님은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도 알 수 있는 거야.” 라는 말을 귀에 따갑도록 하곤 하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늘 물어보셨다. “역사가는 왜 중요하지?” 선생님은 늘 역사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크고 작은 사건들도 매일 일어나지만, 그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내 기록하는 게 역사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학문이라고 배웠다. 어떤 역사가가 서술한 내용이 가장 진실된 역사인지는 아무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적에 목메는 몇 아이들은 효자손 선생님을 미워했다. 시험문제를 교과서에서만 내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내셨기 때문이다. 국영수과도 아닌 과목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야 한다고, 역사가 평균을 깎아먹는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문제를 쉽게 내는 옆 반 선생님을 부러워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꿋꿋하게 교학사, 미래엔, 비상교육 그리고 읽어보라고 했던 역사책을 종합해서 문제를 내셨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효자손은 나름 존경을 담은 별명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수학’, ‘영어’라고 불렸으니까. 어쩌다 잘 차려입은 어른들이 커피 같은 것을 사들고 선생님을 뵈러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적에 목메던 아이들도 몇 년이 지나면 ‘잘 차려입은 어른’ 이 되어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는 미움 받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들은 선생님을 그리워했다.
 
얼마 전 효자손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페이스북을 시작하신 모양이었다. 서투르고 느린 솜씨로 답장을 보내셨다. 선생님은 기계가 어려워지는 걸 보니 나도 은퇴할 때가 되었나보다며 손가락으로도 ‘허허’ 하고 웃으셨다. 이달 28일에 국정교과서가 인터넷으로 배포된다고 한다. 내년에는 인쇄해서 전국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한다. 이제 효자손 선생님은 문제를 교과서 하나에서만 내시면 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역사’를 배울 수 없게 되었다.
 
 
‘바람직한 교과서’. 사진/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사이트
 
 
 
라진주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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