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유독 자주 가던 장소가 떠오른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놀이터. 그 곳에서 녹슨 그네를 홀로 타고 있으면 또래가 하나 둘 모여 같이 흙을 파고, 마주 보고 앉아 시소를 탔다. 하지만 곧 놀이터는 사라지고 주차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온기를 담은 흙 위를 차가운 시멘트가 덮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던 노란 개나리를 밀어버리고 갈색 벽돌로 보기 좋게 메우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추억은 지속가능한 것인가? 기억 속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는 좀처럼 지속가능하지 않다.
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칼국수 골목. 현재는 허름한 외관의 ‘맷돌 칼국수’와 ‘골목 칼국수’ 단 두 곳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아홉 개의 칼국수 집이 서로 경쟁을 할 정도로 크게 성행하던 골목이었다고 한다. 80년대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낸 사람들은 아직 이 골목을 기억하고 있다. 위에 튀김가루를 가득 뿌려주던 칼국수의 당시 가격은 단 돈 400원. 게다가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까지 틀어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현재에도 그 때의 맛과 기억을 찾아 다시 골목을 찾는 중년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칼국수 골목은 이렇듯 그 당시의 추억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였던 신포동의 역사까지 껴안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천시와 중구청이 ‘면’을 앞세운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골목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섭 중구청장은 “칼국수 골목을 헐고 주차장을 갖춘 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을 것이다.”라고 주민설명회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운기 도시공공성네트워크 장은 “칼국수 골목은 하나의 생태계다. 이 곳을 전부 매입해서 허무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끊어 놓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공간, 시대적 단절이 우려된다.”고 말하며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재 활성화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하지만 중구청은 2018년까지 칼국수 골목 일대에 누들가게 창업을 돕는 센터, 문화관 등을 갖춘 누들플랫폼을 세우고 테마거리도 만든다는 계획이며 테마거리는 이미 착공한 상태이다.
사진/바람아시아
물론 낮에도 을씨년스러운 골목과 허름한 벽들은 재개발의 삽질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칼국수 골목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본인의 추억을 쫓아 이제는 자식을 데리고 칼국수를 먹으러 오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눈에 띈다.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빨간 석탄 난로를 가운데 놓고 튀김가루 뿌려진 칼국수를 후후 불어 먹는다. 맷돌 칼국수를 1988년부터 운영 중인 이병무 대표는 “향수가 있어 아직 많은 분들이 이 골목을 찾는다. 번지르르한 건물과 개발도 좋지만 추억, 역사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추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장소가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개발에 불을 켠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인천 동구에 위치한 배다리 또한 마을 파괴의 위험에 처했다. ‘배다리’란 오래전 배가 닿았던 동네를 의미하는 용어이며 현재는 헌책방, 북 카페, 전시 공간 ‘스페이스 빔’이 있는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인천에서는 이 곳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시장도 열리고 젊은 지성들이 모여들던 헌책방도 밀집되어 있어 그 나름의 상징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역사 문화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에 현재 인천시가 산업 도로 개설을 추진 중에 있다. 송도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를 연결하기 위한 남북 간 산업도로를 개설할 계획인데, 이것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배다리 마을 한 가운데를 관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이 산업도로는 애초에 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무리하게 계획되어 있다. 배다리 역사 문화 마을을 파괴하는 도로. 건설해봐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이 뻔한 도로. 그럼에도 인천시는 이 산업도로를 추진하는 것이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방향이라고 믿고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민운기 도시공공성네트워크 장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는 전면 철거식의 재개발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방식이 어려워져 ‘도시재생’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돈의 논리로 접근되는 것이 재개발 문제다.”라고 말했다. 역사와 추억이 담긴 장소를 오래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방향은 없을까? 체코 프라하의 경우는 15세기 세워진 화약탑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구시가지의 중심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 된 천문시계가 아직도 작동 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의 여느 거리에도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어서 민운기 대표는 “지속가능성은 의지와 철학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칼국수 골목이 그동안 가꿔온 생태계를 끊고 그 위에 관광 개발 플랫폼을 새로 짓는 것이 과연 ‘재창조’일까. 진정한 재창조를 말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가치를 찾고자 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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