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기자] 리콜. 기업이 자사 제품의 결함을 발견해 소비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 리콜은 기업에게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다. 시장에 풀린 제품을 회수하고 폐기처분하는데 비용까지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새 제품으로 교환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제공할 제품을 다시 생산하는데도 돈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가 당장의 비용보다 더 막대할 수도 있다. 바로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이다. 소비자들이 믿고 살 수 있도록 신뢰를 쌓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이다. 리콜을 할 만큼의 결함이 발견된 제품을 만든 기업의 신뢰는 다시 쌓아 올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리콜을 단행한 기업과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제품과 관련된 협력 업체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그 제품이 포함된 시장 전체가 냉각될 수 있다. 반면 리콜을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자사 제품의 결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피해 보상안을 내놓는다면 오히려 신뢰감을 쌓을 수도 있다.
리콜은 업계에서의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미치는 여파는 크다. 삼성전자(005930)의 갤럭시노트7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8월19일 국내 출시된 노트7은 출시 5일 만에 폭발 논란에 휩싸이더니 리콜을 거쳐 결국 지난달 11일 출시 두 달도 채 안돼 단종됐다. 60일간의 리콜과 단종 사태를 겪으며 피해를 입은 것은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1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야심작 노트7이 약 60일간 주요 분야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가장 큰 피해자는 삼성전자를 믿고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구매한 소비자다. 국내에서만 노트7은 약 55만대가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55만명의 소비자들이 5.7인치 대화면에 강력해진 S펜, 홍채인식 기능 등의 가치를 인정하고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하지만 배터리 폭발 제보가 이어졌고 출시 2주 만에 리콜을 단행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배터리 결함을 해결한 제품을 다시 내놨지만 다시 폭발로 이어지며 노트7은 시장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트7 구매자들은 불안감과 함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노트7을 교환받지 않고 아직 사용 중인 직장인 김모(35)씨는 “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스마트폰의 안전과 교환 문제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려니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노트7을 대체할만한 제품이 눈에 띄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애플의 아이폰7이 국내 출시됐지만 노트7 사용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업계에 따르면 노트7의 교환율은 20%에 머물고 있다.
전세계에 판매된 250만대의 노트7을 수거하고 배터리 결함을 해결한 제품을 다시 내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삼성전자는 노트7으로 인해 내년 1분기까지 약 7조원의 막대한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IM(IT모바일) 사업부문은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을 넘어섰지만 3분기에는 노트7의 리콜 및 보상비용이 적용되면서 1000억원으로 폭락했다. 2014년부터 최근 3년간 가장 낮았던 IM사업부문의 영업이익이 2014년 3분기 1조7500억원임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가 미친 영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직 정확한 폭발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음 제품에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번 제품 결함의 원인 파악이 우선이다. 삼성전자는 9월2일 리콜을 발표하며 배터리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다시 내놓은 제품도 폭발 사례가 나와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노트7을 만든
삼성SDI(006400),
삼성전기(009150),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각종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들도 이번 사태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노트7에 배터리를 공급한 삼성SDI는 첫 리콜에서 배터리 결함이 원인으로 나와 제품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롯데에 케미칼 사업을 매각하고 배터리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힘을 쏟던 중에 터진 사고라 타격이 크다. 배터리 결함을 해결한 제품도 폭발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설계 문제가 불거지며 노트7에 기판과 카메라모듈 등을 공급한 삼성전기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삼성SDI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7% 줄었으며 삼성전기는 110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노트7로 3분기에 가입자 유치에 본격 나서려고 했던 국내 이동통신 3사들도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노트7이 일찌감치 시장에서 물러나면서 안드로이드 계열의 히트 상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LG전자(066570)의 V20로는 힘이 부족하고 삼성전자의 갤럭시S7은 출시된 지 7개월이 지난 구형 모델이다. 애플의 아이폰7이 나왔지만 기존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 얼마나 iOS(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로 넘어갈지는 의문이다.
KT(030200)와
LG유플러스(032640)의 3분기 단말 수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7.8%, 13.8% 감소했다. SK텔레콤은 단말 수익을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노트7 판매량이 3사 중 가장 많아 단말 수익 감소폭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영업 현장에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는 휴대폰 판매점들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폰7 가입자 유치에 본격 나서야 하지만 노트7의 교환과 환불 업무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무량 증가 외에 기본적으로 불만을 품고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점주는 “노트7 사용자들이 교환을 꺼리면서 교환과 환불 업무를 언제까지 안고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며 “삼성전자에서 소비자들이 만족할만한 보상안을 내놨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트7을 시작으로 본격 홍채인증에 나서려고 했던 주요 은행들과 인증 업체들도 소위 ‘멘붕’(정신적 혼란을 뜻하는 멘탈붕괴의 줄임말)에 빠졌다. 공인인증서 로그인 과정 없이 홍채 인증으로 계좌조회나 이체 등의 서비스를 준비 중이던 주요 은행들은 시장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은행뿐만 아니라 본인인증이 필요한 각종 서비스에 홍채 인증 서비스를 공급하려던 인증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홍채 인식을 통해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삼성패스의 SDK(소프트웨어 개발도구) 배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인증 업계 관계자는 “노트7을 활용한 홍채 인증 서비스가 본격 도입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며 “삼성이 후속 제품에 홍채 인식 기능이 나올때까지 우선 지문 인증 서비스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트7의 부재는 우리나라 수출 전선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수출액 잠정 집계에서 휴대폰이 포함된 무선통신기기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8.1% 하락했다. 무선통신기기의 수출액 감소폭은 2012년7월 이후 4년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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