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궁민관기자] 삼성이 경직된 조직문화의 민낯을 드러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품질의 삼성'에 대한 시장 신뢰가 무너진 가운데, 단종 결정 직후 열린 사장단협의회에서 맥락 없이 건강을 주제로 한 강연을 강행하며 '관리의 삼성'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다.
12일 오전 삼성 사장단협의회가 열린 삼성 서초사옥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전날 삼성전자가 출시 54일 만에 갤럭시노트7 단종을 선언, 사태가 국가경제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첫 회의인 만큼 위기에 대처하는 삼성의 표정에 국민적 이목이 쏠렸다.
삼성 사장단 역시 이를 의식한듯 어두운 표정으로 속속 협의회에 참석했다. 권오현 부회장과 김기남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김현석 VD사업부 사장 등 삼성전자 소속 사장들을 비롯해 비전자 계열사 사장 등 40여명의 사장단이 참석했지만, 갤럭시노트7과 관련된 질문에 모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책임자로 꼽히는 신종균 IM부문 사장과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 조남성 삼성SDI 사장은 불참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삼성은 이날 '백년허리'의 저자 정선근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주임교수의 강연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둬 취재진을 놀래켰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협의회는 6개월 전 섭외된 강사를 모시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금융, 패션 등 비전자 계열사 사장단을 상대로 강연을 진행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로, 계열사 현안을 회의하기 위한 모임은 아니다"며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는 삼성전자 IM사업부를 중심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는 그룹의 사장단협의회와는 별개로 삼성전자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 삼성의 설명이지만, 위기의 정도를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삼성의 간판인 스마트폰 사업의 명운이 달려 있는 데다, 그룹 전체의 글로벌 이미지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기 때문. 당장 삼성전자가 감당해야 하는 손해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관련 부품사를 포함해 금융(삼성페이), 의료서비스 등 관련 사업까지 얽혀있어 특정 사업부만의 일로 치부하기 어렵다.
삼성의 품질경영을 제시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비춰봐도 이번 사장단협의회 행보는 안일해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들을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꿀 것'을 지시하며 이른바 신경영을 선포했다. 1995년에는 높은 불량률을 보였던 애니콜 15만대를 회수해 '화형식'을 치르는 등 품질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각인시켰다.
이는 자칫 이재용호에 대한 의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인한 전세계 환불 및 교환 규모만 180만대로 추산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갖은 불편과 함께 혼선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미래전략실이 마땅히 이번 강연을 취소 또는 연기했어야 옳았다"며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상황에서 예정된 일정이라고 강행하는 것은 그룹 컨트롤타워의 존재이유를 망각하는 처사"라고 혀를 찼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은 사태보다 그 이후의 대처를 보고 경영진의 능력을 평가한다"며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 대한 실망을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갤럭시노트7 출시를 진두지휘했던 고동진 사장은 전날 사내게시판을 통해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사태 수습에 대한 의지를 전달했다. 고 사장은 "큰 규모의 경영손실 외 임직원의 마음의 상처를 잘 안다. 참담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원인을 반드시 규명하도록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여전히 갤럭시노트7의 재발화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갤럭시노트7 사태에 따른 매출 및 손익의 변동사항을 3분기 실적에 반영한다며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을 5조2000억원으로 수정 공시했다. 기존 발표(7조8000억원)보다 2조6000억원 감소했다. 매출액도 2조원 감소한 47조원으로 수정했다.
남궁민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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