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맷집은 달라요. 신념이 필요해요.”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인터뷰
2016-09-19 17:07:32 2016-09-19 17:07:32
가을의 바람은 다르다. 여름의 열기를 머금었으면서도 본연의 청량한 계절감을 잊지 않고 불어온다. 모두 바삐 발걸음을 놀리는 애오개역의 풍경도 그러하다. 송골송골 목덜미에 맺히는 땀방울을 잊은 채 바삐 걸어가면서도 발걸음은 경쾌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뒤늦게 성내는 따스한 햇볕과 살랑 부는 바람의 간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높다란 건물이 드문 공덕동의 한가운데에서 직선으로 뻗치는 햇빛을 받는다. 사람도, 해님의 그을음도 시들해지는 골목길에 소담스레 자리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을 만날 수 있다. 승강기에 들어서 유난히도 지문이 그득 쌓인 숫자 4를 누른다. 띵동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 빼곡한 글씨 앞에 선한 눈매의 김언경 사무처장을 마주한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취재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언련은 언론이라는 주제로 32년째 활동하는 언론 시민단체입니다. 처음부터 시민단체로 설립된 건 아니었어요. 동아투위나 조선투위처럼 70년대 정부의 언론탄압으로 해직된 언론인, 80년대 보도지침에 항거했던 원로 언론인들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언협)를 구성했어요. 비상식적인 언론 문제에 대응하자는 취지로 단체를 설립했고 그 일환으로 《말》이라는 기관지를 만들었어요. 사실상 언론이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볼만 한 잡지였죠.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시절이었을 텐데 순탄하지만은 않았겠어요.
 
너무 엄중한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보도지침 같은 언론탄압이 있던 시절이니까요. 그런 상황인데 《말》지에서 보도지침을 폭로했어요.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언협에서 밝힌 거였어요. 사실 그걸(보도지침을) 폭로하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어쩔 수 없었죠. ‘단체가 와해되더라도 보도지침은 밝혀야 할 문제다.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라고 생각해서 폭로를 하게 됐죠. 결과적으로 언협이 거의 와해될 수준으로 고초를 겪었어요. 많은 분들이 구류를 살거나 구속됐을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말》지를 계속 만들었어요. 그런 힘이 있었어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죠?
 
맞아요.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라도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80년대를 겪으면서 시기적으로 시민운동, 시민사회의 출발과 맞물렸고, 언협도 변화를 겪었어요. 원로 언론인 위주의 단체가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되는 단체가 된 거죠. 91년도에 언론학교라는 대중강좌를 시작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기존의 언협 회원이었던 언론인들이 뒤로 물러나고 시민들이 대거 들어오게 됐어요. 98년에는 단체 이름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으로 바꾸고 공식적인 시민사회단체로 등록을 했어요. 그래서 역사는 32년 됐지만 시민단체로 활동한 건 23년 정도라고 볼 수 있죠.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단체로서 민언련은 어떤 활동을 하나요?
 
저희가 하는 일은 정말 단순해요. 민주언론을 위한 일은 닥치는 대로 뭐든 다 합니다(웃음). 일단 모니터링을 하고, 언론 정책도 개발하구요. 매체들이 좋은 방송을 해서 딱히 모니터할 필요가 없을 때는 언론 정책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해요. 바른 언론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방송법 개정을 하는 활동을 한다든가…. 
 
-그런데 사실 요즘 모든 매체가 좋은 방송을 하지는 않잖아요.
 
특히 신문이 굉장히 심각했죠. 신문에 자전거를 경품으로 준다던지…. 그래서 언론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라면 필요한 건 뭐든지 다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정부도 감시하고, 언론사도 감시하고. 보도라는 것이 단순히 보도 내용만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보도를 둘러싼 광고나 이면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까지 다 연구해서 감시하고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전문적인 활동이군요.
 
가장 중요한 건 시민들하고 많이 만나야 한다는 거죠. 저희는 시민단체니까. 시민단체가 아니고 연구단체라면 연구자들 몇 명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민언련은 언론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단체가 아니니까…
 
네. 그렇죠. 저희는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언론을 주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성격의 운동에 방점을 찍고 활동하고 있어요.
 
-단순한 활동이라고 하셨는데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하시네요.
 
단순한데 엄청 많아요(웃음).
 
-민언련에 성향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너무 진보적이라든가, 급진적이라든가 하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희는 스스로를 진보적인 단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내놓은 결과가 대부분 진보적이라고 평가를 받기는 하죠. 지금 언론 자체가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요. 저널리즘의 기능이 정부와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썩은 것을 찾아내서 그것을 개선하는 거잖아요. 결국은 모든 언론이 진보적일 수밖에 없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반드시 언론이 필요해요. 그럼 결국 제대로 된 언론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완성되잖아요. 그게 아니면 독재로 가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삐뚤어져 있는 언론을 지적하면 민언련이 마치 어떤 사상을 갖고 언론을 제단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죠. 특히 조중동에서. 요즘은 공영방송에서도 민언련이 정치색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도를 많이 하더라구요.
 
-결국 활동의 결과가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단체의 성향이 정의되는 거군요. 
 
그래서 저희도 그런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죠. 예를 들어 ‘뉴스타파’가 진보적인 매체냐고 하면, 사실 본인들은 전혀 아니라고 해요. ‘우리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맞게 누구든 다 비판한다(웃음). 새누리당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어떤 당의 어떤 의원이든 문제가 있어서 우리한테 제보가 들어오면 우리가 판단해서 취재를 한다. 이건희 회장이든 누구든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보도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언론 현실 때문에 비정상적인 혹은 너무 급진적인 매체라고 오해를 하는 거죠. 민언련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진보라는 프레임이 아니고, 언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잘못된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고 알리는 게 지금 민언련에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편도 감시하는 거구요. 단순하게 종편이 막말하니까 미워하는 게 아니에요. ‘저것은 언론의 행태가 아니다.’라고 메시지를 내고 싶은 거죠.
 
-결국 언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사실 대중들이 언론의 문제를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대중이 언론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다양해졌어요. 최근 민언련이 잘 운영되는 것도 시민들이 언론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10년 전이나 20년 전에는 언론문제가 지식인들끼리 공유하는 문제였는데, 이제는 중고등학생들도 ‘언론이 문제다.’라는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어떤 보도가 왜 문제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그런 점에서 언론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드리고 지금 현실에 얼마나 간극이 있는지를 말씀드리면 대중들이 거짓된 논리에 현혹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다른 정보를 접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거죠.
 
-그런 활동의 대표적인 게 ‘종편때찌’ 프로젝트구요.
 
현재로서는 그렇죠. 사실 민언련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출범하기 전에도 당연히 방송 모니터를 했죠. 몇 년 전까지는 지상파 3사 위주로 했어요. 사실 민언련이 종편에만 집중하는 단체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시민들의 성원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니까 최소한 대선까지는 종편때찌 프로젝트 위주로 운영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죠. 다른 할 일들도 많은데 종편만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예를 들면 대선을 대비해서 언론 정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원래 하던 일들과 병행하면서 종편때찌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종편감시단체처럼 보일까, 민언련의 정체성이 흔들릴까 걱정도 됐어요. 
 
종편을 통해서 보수 언론이 부리는 패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과 기울어진 우리 언론 환경을 조금이라도 평편하게 만들자는 요구가 시민들께서 많은 호응을 보내주신 이유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최소한 대선까지는 프로젝트 정말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종편 관련 질문 한 가지만 더 할게요. 민언련에서는 종편이 결국에는 어떻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언련은 TV조선이나 채널A는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JTBC도 마찬가지지만. 종편 출범 전부터 민언련이 여러 차례 신문과 방송 겸영의 부적절함을 지적했어요. 특히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조중동이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서는 더욱 문제가 되는 거죠. 경제적인 관점은 차치하더라도 국민 개개인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민생 문제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전반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해악이기 때문에.
 
-그럼 종편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히 어떤 제도를 만들지 않더라도 현행 방송법으로 제대로 심의만 하면 종편은 당연히 재승인에서 탈락할 거예요. 제대로만 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부과하는 벌점, 그 회사의 경제성이나 콘텐츠 투자 등을 고려해서 재승인을 하는데 제대로만 심사하면 종편은 당연히 탈락하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봐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재승인해주면 안 된다. 종편 없애야 한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지금 종편이 받고 있는 특혜만 걷어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언론계에서 활동한 선배로서 대학생들과 바람 기자단에게 한 말씀만 부탁드릴게요.
 
쑥스럽네요(웃음). 그래도 조언을 드리자면, 언론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누리는 길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성직자처럼 헌신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소외받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인데, 그만큼 공부도 많이 필요하구요. 발로 뛰는 일도 많고.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누구한테도 함부로 투사가 되라고는 못하겠어요. 다들 자기 삶 속에서 힘들 테니까. 그럼에도 꼿꼿하게 저널리스트로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려운 건 알죠. 그만큼 맷집이 있어야 버티는 거니까. 맷집은 저절로 생기지 않아요. 많은 공부가 필요해요. 단순히 글쓰기 공부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널리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해요. 민언련에서 ‘참언론 아카데미’라는 언론인 육성 프로젝트를 했는데, 강좌를 주최하면서 신념도 배워야 생긴다는 걸 알았어요. 언론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걷기에는 험난한 길이란 걸 알아야겠죠. 
 
그래서 민언련에서도 대학언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특히 언론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에게는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글쓰기 강좌나 대학언론 강좌도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죠. 강좌나 교육이 단시간 내에 빠른 효과는 내지 못하더라도 시민단체로서 민언련이 꾸준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봐요. 다른 매체나 현직 교수님들과 함께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하고 있구요.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하는 강의니까 언론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가성비 최고의 강좌라고 자부합니다(웃음). 대학언론을 위해서 민언련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꼭 알려주세요.
 
정오를 하릴없이 보낸 골목길의 풍경은 한산하다. 햇빛은 눈앞에서 비치는 듯 따갑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좁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바쁜 내음은 한 시간 전과 다름없다. 바쁜 발놀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누구도 알아줄 리 없는 발놀림이지만 오가는 발걸음은 분주하다. 손 때 가득한 현판의 아홉 글자도 알아주는 이 없이 32년의 여정을 바삐 보냈을 테다. 때로는 힐난 받고 때로는 광영의 순간을 함께하면서 맷집을 키워왔을 민언련을 뒤로 하고 나선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햇볕은 멀어 보인다. 터무니없이 멀어 보이지만 볕은 따스하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동지훈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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