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잇단 철퇴로 제지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공정위는 13일 신대양제지·태림포장·아세아제지 등 담합행위에 가담한 45개 제지사들에게 총 1039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그중 42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앞서 지난 3월 골판지 원지 담합으로 부과된 과징금(1108억원)까지 포함하면 과징금은 총 2148억원에 달한다.
과징금이 부과된 업체 관계자들은 “아직 공정위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보받지 않았다”며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담합으로 피해를 본 일부 중소업체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반발, 기업규모에 따라 상반된 표정을 보였다.
공정위에 따르면 제지업계 담합은 크게 골판지(4개 부문)와 신문용지(1개 부문) 분야로 나뉜다. 특히 골판지의 경우 원료는 싸게 사고 제품은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원료구매→중간가공→최종제품 판매’ 등 전유통 단계에 걸쳐 전방위적 담합이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들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담합, 관련 시장에 심각한 경쟁제한을 초래했다”며 “판매 담합으로 비용 상승분은 최종제품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돼 소비자의 후생손실을 가져왔다. 구매 담합은 구매물량 감소, 단가 인하로 인한 원재료 공급자의 소득감소 등 공급자의 후생손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아세아제지 등 18개사는 2010년 4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여러 차례의 모임 등을 갖고 6차례에 걸쳐 골판지 고지 구매단가를 kg당 10~30원씩 인하하기로 담합했다. 수도권 메이저 업체들이 결정하면 지방에서도 그 결과를 공유했다. 또 태림포장 등 18개사는 골판지 원단 판매 과정에서 2007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모임을 갖고 총 6차례에 걸쳐 원단 가격을 10~25% 인상했다. 이들은 CJ 제일제당 등 골판지 상자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16곳에 제품을 납품하는데 담합으로 인해 상자 납품가격이 4~26% 인상됐다.
일단 과징금이 부과된 업체 관계자들은 “아직 공정위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해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극도로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미 지난 3월 1차 과징금 처분이 발표된 바 있어, 이번 발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분위기도 감돈다.
얼마 전 대형 화재에다, 총 534억원의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된 신대양제지 측은 “화재 뒷수습에 다들 정신이 없다”, “관련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다”고 입을 굳게 닫았다. 리니언시 제도(자진신고자감면제)를 이용해 과징금(450억) 상당액을 감면받은 것으로 알려진 태림포장 측은 “최대 대주주가 바뀌었다"며 "담합은 과거 경영진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436억원의 과징금이 내려진 아세아제지도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법리검토 후 이의신청 또는 행정소송 등을 통해 대응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제지사로부터 원지를 공급받아 골판지를 생산하고 있는 판지사 내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반면 대형업체들의 담합으로 그간 피해를 입어온 중소업체들 사이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번에 처벌을 받은 내용은 2013년까지의 내용으로, 이후에도 담합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업계에서는 메이저 업체들이 가격인상을 목적으로 암묵적으로 원지 공급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공정위로부터 부과된 감면금을 마련키 위해 또 다시 담합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관계자도 “메이저 업체들이 수조원대 시장을 주무르고 있는데 몇백억원 수준의 과징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공교롭게도 신대양제지가 얼마 전 화재 피해를 입었는데, 이를 계기로 시장 내 물량은 더욱 줄고 가격은 인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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