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여변호사 폭행사건’이 가관이다. 수형자의 구치소 내 변호사 폭행사건에서 전관예우, 변칙적 성공보수금 등 낯 뜨거운 법조계 문제까지 번지고 있다. 정 대표 개인으로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추행 사건이나 교도관에 대한 폭언·폭행, 재판부 접대시도 의혹 등 여러 추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건 발발 원인을 두고는 정 대표와 변호사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변호사에게 준 20억원이 보석허가에 대한 성공보수금이라고 한다. 보석허가를 받지 못했으니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대표는 계약서도 안 쓰고 돈을 받아갔다며 변호사에게 흙탕물을 튀겼다. 변호사는 그 돈이 정 대표가 저지르고 다닌 민·형사 사건 16건에 대한 변호인단 구성비용인 착수금으로, 돌려줄 돈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성공보수금 30억은 받았다가 지난 3월3일 되돌려줬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는 여기에 덧붙여 정 대표가 자신을 노예처럼 부렸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폭행을 두고도 말이 엇갈린다. 변호사는 착수금 반환 문제로 면담하던 도중 정 대포가 손목을 비틀어 의자에서 넘어뜨린 뒤 접견실 문을 잠그고 욕설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손목 연골을 다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는 착수금 반환 얘기 도중 변호사가 나가려는 것을 막았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강남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을 이송하는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곧 밝혀질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경찰 또한 수사 중이다.
이번 사건은 기업 총수의 형사 사건에 대한 법조계의 어두운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죄를 지은 기업 총수가 법과 사법부, 변호사, 교정당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 대표는 조폭이 해외에서 판을 벌인 도박장에서 100억원을 날린 상습도박범이요, 국부 유출범이다. 그는 기소단계부터 국대 대형로펌들을 번갈아 선임하며 방어했다. 정 대표를 변호한 변호사 9명 중 4명이 판사, 그 가운데 3명이 부장판사 출신이다. 변호를 1심부터 맡았던 여변호사와 오갔던 돈만 50억원임을 감안해보면 정 대표가 수임료로 뿌린 돈은 그가 마카오 등에서 날린 도박자금과 맞먹는 수준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변호사와 교도관들을 상대로 난동을 부린 것만 봐도 정 대표에게 진지한 반성 따위가 있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정 대표의 이런 행동은 법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1심에서 정 대표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은 2개월 감형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구속돼 있으면서 반성하고 있고, 동종 범죄 처벌 전력이 없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상당한 금원을 기부했다"는 것이 감형 이유다. 정 대표는 1심에서 3번 제출했던 반성문을 2심에서는 5번 제출했다.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한 검찰은 쌍방이 항소한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이 구형량을 스스로 깎는 것은 이례적이다. 결과적으로 정 대표로서는 돈만 뿌리면 검찰도 구형량을 깎고 재판부도 형을 감형한다고 생각했으리라.
지금까지 법정에 선 재벌 등 기업 총수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 때부턴가 그들은 '환자 퍼포먼스'를 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선처를 구한다. 통 큰 인사는 '일자리 창출' 공약도 내건다. 구치소에서 성경책을 들고다니거나 반성문 따위를 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건강상태가 위험한 총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에 비춰 봤을 때 그런 것들은 오로지 법정구속을 면하기 위한 돈 자랑에 지나지 않는다. 명절이나 신년이면 재벌 특사가 쟁점이 된다. 국민의 법감정은 극구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경제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총수들은 또 풀려난다. 이 악순환의 단절을 총수들에게는 바라기 어렵다. 오직 엄정하고 원칙적인 수사와 서릿발 같은 판결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썩어가는 재계를 제대로 정화하는 것이고 불신에 찬 국민들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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