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겨 뿌듯한 한 해를 보낸 이도 있을 것이고, 아쉬움과 후회가 더 큰 이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주요 기업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일과 가정을 동시에 잡으며 말그대로 최고의 경영인이 됐다. 지난 3분기 45억달러의 매출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주가도 100달러를 웃도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일 평균 활성이용자 수 역시 사상 처음으로 10억명을 돌파하는 등 탄탄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이달 초에는 딸 출산 소식과 함께 수십조원의 기부 계획을 밝혀 로맨틱 아빠로 등극했다. 두 달간 출산휴가를 사용한 점 역시 훈훈함을 더했다.
반면 마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CEO는 사상 초유의 스캔들에 휘말리며 굴욕의 한 해를 보냈다.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전해지기 직전 발표된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뽑은 올해의 기업인 순위에서 20위에 랭크되며 나름 괜찮은 성과를 보였던 그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수 천만 유로에 달하는 퇴직 연금과 내년도 연봉을 받게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계속해서 구설에 오르고 있다. 희비가 엇갈린 기업인들이 과연 이들 뿐일까. 저마다의 사연으로 최고 혹은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기업인들을 살펴봤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올 한 해 일과 가정을 동시에 잡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경영인에 올랐다. 사진/뉴시스AP
북유럽의 강소국 덴마크는 제약산업 선진국으로도 유명하다. 제약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대표 제약기업인 노보 노디스크는 전세계에서 4억명이 앓고 있는 당뇨병의 치료제인 인슐린 시장의 47%를 점유하는 절대 강자다. 이 밖에도 노보 노디스크는 성장 호르몬, 호르몬 대체치료, 혈우병 치료제 등을 생산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도대비 6% 증가한 888억크로네를 기록했으며, 최근 5년 사이 주가 상승률은 300%에 이른다. 이 같은 알짜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는 올해로 15년째 CEO로 재직 중인 라르스 레빈 쇠렌센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기업인이지만 HBR이 인정한 올해 최고의 CEO다.
그러나 그가 올해의 CEO로 선정된 데에 이 같은 재무적 성과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다. 진가는 사회적 책임 부분에서 드러났다. HBR은 올해부터 숫자로 표현되는 정량 평가 외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로 대변되는 정성 평가도 병행했다. 지난해 1위를 차지했던 제프 베조즈 아마존 CEO를 87위로 떨어뜨린 평가 요인이다. 쇠렌센이 행했던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노력이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HBR은 쇠렌센을 매우 소탈한 사람으로 회고했다. 지난 여름 그의 별장에서 가졌던 인터뷰를 떠올리며 "폴로셔츠에 반바지, 샌들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했다"고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묘사했다. HBR에 따르면 쇠렌센은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에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인슐린을 제공하고 있으며, '세계 당뇨병 재단'도 설립해 회사 수익의 일부를 이곳에 기부하고 있다. 또한 그는 동물 실험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정치적 로비는 투명하고 제한적인 범위에서 실행하고 있다는 소신도 밝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쇠렌센은 "보기엔 별 것 아닌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회·환경적 비용이 훗날에는 경제 비용으로 전가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운동화 디자이너 출신으로 기업 수장에까지 오른 마크 파커 나이키 CEO는 유능한 전임자를 뛰어넘는 기업인으로 인정받으며 커리어의 정점을 새로 썼다. 미 종합경제지 포춘은 올해의 기업인으로 파커를 뽑으며 "노련한 챔피언처럼 계속해서 경쟁자들을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유명 창업자의 뒤를 이은 부담에도 나이키를 새로운 고지에 올려놓은 그의 업적은 많은 경영학도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숫자로 확인한 그의 경영 성적표는 실로 놀랍다. 2006년 취임 이후 매출과 수익은 각각 2배씩 늘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된 2분기 회계연도 주당 순이익(EPS)은 전년 동기대비 22% 증가한 90센트를 기록했다. 중국 내 매출이 34% 늘어난 것이 주효했다. 이에 힘입어 5년 전 40달러 수준에 그쳤던 주가는 3배 이상 급등하며 질주를 거듭했다. 2:1 액면분할을 실시한 주가를 기준으로 연간 상승률은 31%에 달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의 상승률이 0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이키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의 매력은 숫자를 떠나 봤을 때 더욱 빛난다. 포춘에 따르면 파커는 스스로의 역할을 "나이키라는 숲을 키우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참나무를 소나무로 만들 능력은 없지만 모두를 최고의 참나무로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파커는 상명하복식 의사 결정 대신 모르는 것에 끈질긴 의문을 표하며 각 사업부 리더들이 알아서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몸의 모든 움직임을 측정하는 전자팔찌 '퓨얼밴드', 실로 직조한 초경량 운동화 '플라이니트 레이서' 등은 그 혁신의 결실이다. 나이키 공동창업자인 필 나이트가 "지난 9년간 파커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며 "이제는 미디어가 그를 주목할 차례"라 칭송할 만 하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글로벌 게임 개발 및 유통업체 일렉트로닉 아츠(EA)는 앤드류 윌슨의 손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지난 2000년 EA 호주 스튜디오로 입사해 아시아 온라인 총괄, 스포츠 레이블 개발 수석 등을 거쳐 첫 내부 출신 CEO로 발탁된 윌슨은 누적 적자가 25억달러에 이르던 EA를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바꿔놨다. EA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징가, 로비오 등이 전략 부재로 빠르게 몰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윌슨은 스포츠 총괄이었던 시절 피파 시리즈를 온라인으로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던 경험을 살려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게임의 질적 향상과 크로스 플랫폼 서비스 제공으로 수익성 회복에 초점을 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 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4(PS4) 등의 출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게이머 우선주의 문화"를 강조한 결과 모바일과 콘솔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플레이어로 자리 매김 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EA의 다운로드 건 수는 7억건에 달했고 월평균 활성 이용자 수도 1억6000만~1억7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춘은 윌슨을 올해의 CEO 3위에 올렸다.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로 공유경제의 아이콘이 된 트래비스 칼라닉은 올해에도 혁신의 행보를 이어갔다. 페이스북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페북 메신저로 우버 택시를 부를 수 있도록 했고, 버스 형태의 '스마트 루트 서비스'도 도입키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미리 연락한 고객 중 목적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특정 정류장에서 버스로 픽업하는 방식의 이 서비스는 공석이 생길 때마다 버스 운전자가 승객을 태우면서 지속적인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다. 택시의 대안으로 떠오른 우버가 대중교통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뒤따르는 배경이다. 이 같은 요인들로 우버의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8월 페이스북보다 2년 빨리 500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포브스가 우버의 가치를 680억달러로 추산했다. 107년 전통의 제너럴모터스(GM)를 추월한 것이다. 우버의 질주에 칼라닉 CEO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최종 8인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공유경제 역기능에 대한 비판을 면할 수는 없지만 단시간에 기업을 성장시킨 공로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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