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처방이 중요한 만큼 처방의 시기도 중요하다. 증상 초기에 적절한 처방으로 나을 수 있던 것도 자칫하면 평생 질병이 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미국에서 불거진 금융위기는 전세계로 확산됐다. 이후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듯 했던 유럽 경기는 2010년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사진/위키피디아
ECB는 2010년 5월 정책금리를 1.00%로 초저금리를 이어가면서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프로그램 1차SMP(Securities Market Program)를 시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이른바 '남유럽돼지들(PIGS)'을 중심으로 유럽국가 재정위기가 확산됐고 ECB는 2011년 8월 2차 SMP를 시행했다.
이어 ECB는 2011년 11월과 12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1.0%로 인하했으며 유럽 시중은행들에게 1%대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제도인 1차 LTRO(Long Term Refinancing Operation) 역시 단행했다.
일단 남유럽 국가 위기의 불은 껐지만 회복추세로 들어서지는 못했다. 결국 ECB는 2012년 2월 2차 LTRO를 단행했고 그 해 7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다섯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ECB의 기준금리는 2.5%에서 0.05%로 하락했다.
아울러 올해 1월에는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1조1400억유로 규모의 국채매입프로그램을 단행했다.
그러나 저물가(디플레이션) 우려는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나선 연준과 달리 ECB는 화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현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011년 이후로 꾸준히 하락세다. 2011년 10월 2.8%였던 유로존 물가는 지난달 0.1% 상승률까지 내려왔다. 제로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독일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독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고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로 내수 위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로존에 재차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따라 ECB가 다시금 부양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지난달 ECB 회의 당시 드라기 총재는 "12월 추가 부양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시장의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로이터 조사 결과 이코노미스트의 75%가 12월 ECB의 추가 부양책이 단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2016년 9월까지 계획된 자산매입 기간을 2017년 6월로 미룰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역대 최저인 0.05% 기준금리 역시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CB 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어 부양 수단 역시 구체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이 반영되면서 유로화 가치는 지난 3개월 동안 달러 대비 8.48% 하락했다.
ECB의 추가 부양책이 단행될 경우 전세계와 유럽 경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줄 수 있을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비관론자들은 당초 ECB의 정책 목적인 저물가 해소, 남유럽 신용경색 완화, 유로화 약세 가운데 유로화 약세를 제외하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향후 효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이번 부양책을 통해 유로화 약세를 통한 유럽국가들의 수출 진작이 전세계로 선순환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제기했다.
어희재 기자 eyes4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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