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살던 당시 나에겐 유기농을 찬양하던 미국인 하우스메이트가 있었다. 그는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로컬 마켓에 가, 커다란 갈색 봉투에 담긴 채소들을 한 아름 껴안은 채 집에 돌아오곤 했다. 무엇을 샀냐고 물어볼 때마다, 싱싱한 채소와 고기를 샀다는 그의 뿌듯함이 섞인 말에 이끌려 하루는 그를 따라 나갔다. 총 인구가 3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인데도, 사람은 사람이거니와 유기농 채소, 과일, 음식, 직접 만든 공예품 등 그 종류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일랜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과 유기농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아일랜드 대형마트에 가 봐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단어는 ‘Organic'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가격은 일반 제품과 2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돈을 아끼고 아끼던 유학생 신분이었던 나 또한, 친환경 달걀이나 토마토 같은 상품을 자주 구매할 수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독일에서는 독일인 친구에게 장 보러 가자고 하니 대형마트대신, 그 동네의 로컬 마켓으로 향했다.
약 10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웰빙 열풍이 일어나 대형마트의 유기농 코너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웰빙’이라는 문구가 광고에서 빠지지 않았고, 필자의 어머니도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난 웰빙 제품을 가끔씩 사서 들어오시곤 했다. 10년 지난 지금, 우리나라도 아일랜드처럼 친환경이 우리 삶에 보다 가까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대형마트나 백화점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이 코너를 지나치기 일쑤다. 화학비료에 있어 그 걱정이 덜하기도 하고 분명 내 몸에 좋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 코너에 마련되어있는 일반 농산물 가격을 보면 그 마음을 돌리게 된다. ‘차라리 인스턴트식품을 줄이는 게 더 웰빙이겠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마트에서 둘러보면 친환경농산물은 일반 농산물 가격의 3~4배는 한다.
그렇다면 자취생활을 하며 끼니를 거르기 십상인 대학생들에겐 친환경농산물은 그저 ‘사치품’에 불과한 걸까? 여기, 대학생인 나 자신에게도, 농가에도 보탬이 되는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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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이촌역 근처에 위치한 아이쿱생협 용산 이촌점
친환경 농산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아이쿱생협에서 장을 보고, 자취생은 아니지만 자취생이었던 시절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자취 요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집 근처에는 친환경 매장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정도 떨어진 이촌역으로 향했다.
(아이쿱생협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면 읽어보시길! http://baram.asia/22034806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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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채소들이 진열되어있고, 가격표에는 일반가와 조합원가가 함께 기재되어있다.
매장 안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가격표의 가격이 2가지였다. 하나는 일반 가격, 또 다른 하나는 조합원 가격이었는데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출자금을 내면 일반 가격에서 20~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일반 가격으로 계산을 마치고 장본 것들을 품에 안아 매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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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에 그득 들어찬 채소들이 그 전날 먹었던 기름진 곱창을 씻어내려 줄 것만 같았다. 시리얼, 라면, 볶음밥으로 연명하던 과거의 자취생활 또한 어느덧 아련한 추억으로 탈바꿈했다. 한 손에는 채소들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들고, 한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어 친구 A에게 밥 먹었냐 물었다. 평소 인스턴트식품이나 군것질을 좋아하는 A는 예상했던 것처럼 간장 계란밥으로 대충 때웠다고 했다. 그 순간 A가 술에 찌든 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A에게 이 요리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기름, 술, 나트륨에 쩐 그의 위에 한 줄기 성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그에게 선사할 레시피는 친환경 참치 계란 비빔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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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참치 계란 비빔밥 재료 (2인분 기준, 가격은 조합원가가 아닌 일반가 기준이다.)
당근 1개, 깻잎 약 8장(?), 돌나물 2줌(?), 오이 1개, 달걀 2개, 고추장 숟가락 2큰 술, 참치 1캔(150g), 참기름
1. 제일 중요한 것은 밥솥에 밥이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밥이 없다면 밥을 얹혀놓고 요리를 시작하시길!
2. 돌나물, 당근, 깻잎, 오이를 씻고 물기를 없앤다.
3. 당근과 오이를 채 썬다.
4. 깻잎은 큼직하게 8등분으로 썬다.
5. 참치 캔을 사진과 같이 따고 물기를 뺀 후 그릇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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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부치는 데 노른자가 반숙이 되어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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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접시에 밥과 준비한 재료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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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참기름 1큰 술과 고추장 숟가락 2큰 술을 넣는다. (각자 넣고 싶은 만큼 넣어 매운맛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참기름 넣는 것을 잊어버려 넣지 않았지만 맛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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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벼서 맛있게 먹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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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식품, 그 간단함에 있어 경쟁이 되지 않지만, 20분 남짓한 조리시간과 특별한 음식 솜씨가 필요하지 않아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런 자취 요리가 아닐까싶다. 또는 A처럼 잦은 인스턴트식품 섭취와 음주로 인해 지친 대학생들의 위에 단비를 내려줄 수 있는 요리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것이 우리에게 보탬이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지역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그 이야기의 시작은 농산물의 유통과정에 있다. 일반적인 농산물 유통은 중간 유통과정이 길어서 가격이 비싸지기 마련이다. 도매시장을 통한 유통을 하지 않고 중간상인이 장악한 유통이윤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긴 유통과정을 거치며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농가들과 직거래나 계약재배를 하는 방식은 농가에게도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농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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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단계를 간소화하면 유통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유통구조를 간소화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방식은 가입된 조합원 규모 혹은 계약재배를 통해 과잉생산이나 생산부족 같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인다. 그러면 농산물의 적절한 가격을 유지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런 협동조합에서는 농민들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기금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농가의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아일랜드의 로컬 마켓을 예를 들면, 그곳에서는 생산자와 직접 만나 거래를 할 수 있다. 일반 마트에서 누가 재배한지 모르는 당근과 감자를 구매하는 것보다 생산자의 얼굴을 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본 후에 산 당근과 감자가 더 신뢰할 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와 생산자를 항상 직접 연결할 수는 없기에 중간에서 중간 유통업체가 생산자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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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쿱생협은 온라인에서 생산 유통 인증을 받은 단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친환경 농산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고, 농가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친환경 농산품을 보면 ‘비싸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데, 꽤 경쟁력 있는 가격 덕분일까. 이제는 ‘건강에 좋다, 우리나라 농가를 도울 수 있다’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고가’이미지가 단단하게 씌워져있다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마트 한구석에 ‘격리’되어 있는 친환경농산물들이 탈출할 수 있을까? 어쩌면 머지않은 것이 아닐까. 오늘 친환경 자취 요리를 만들어 본 것처럼 친환경농산물은 지금도 가격경쟁력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언젠가 농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일도 어쩌면 머지않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들의 장을 깨끗이 씻어 내려줄 뿐만 아니라, 농부들의 땀도 시원하게 씻어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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