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업체를 상대로 소형 베어링의 가격을 담합한 일본 업체가 최초로 정식 재판에 넘겨졌다.
국제적으로 생산과 판매 등을 수행하는 기업 간의 담합인 '국제 카르텔'에 대해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흑연전극봉, 비타민 등 품목에서 과징금 처분을 내린 적은 있었으나, 독점규제법상 처벌 규정을 역외 적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한동훈)는 한국 시장에서 소형 베어링의 가격 등을 담합한 일본 베어링업체 A사와 A사의 한국지사를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공판 처분했다고 13일 밝혔다.
소형 베어링 분야 전 세계 1위인 A사는 세계 2위인 일본 B사와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S전자, L전자 등 한국 시장에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 물량, 판매처 등을 공동으로 결정하기로 모의하고, 각각 한국지사에 지시해 담합을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중 A사는 지난 1951년 일본에서 설립된 이후 지난해 매출 약 4조6600억원을 기록한 전 세계 1위 소형 베어링 생산업체며, 2012년 기준 530억원 수준의 한국 시장에서 56.3%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2003년 6월 국내 업체의 가격 인하 요구가 거세지자 인하 폭을 최소화하면서 상호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A사는 L전자, B사는 S전자를 맡아 가격을 내리기로 하고, 각각 0.5센트씩 가격을 인하했다.
A사 등은 이후 2008년 4월 철강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자 S전자 등 주요 거래처에 대한 소형베어링 판매 가격을 공동으로 5%~13%, 그해 9월 환율이 오르자 S전자 등에 대한 판매 가격을 공동으로 20%~33%씩 추가로 인상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형 베어링은 정밀전자제품, 정밀기계,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정밀 부품으로, 소수점 아래 5자리(㎜)까지 맞춰 계측·제조하고, 강도도 유지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들은 소형 베어링 분야에서의 독보적 기술력과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담합을 공모했으며, 도쿄에 있는 커피숍, 회의실 등 일본에서 본사 간에 담합을 결의한 후 한국에서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월 A사와 A사 한국지사에 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후 검찰에 고발했으며, 검찰은 이달까지 당시 A사에서 일본 본사 베어링 총괄부장을 담당했던 고위 임원 등 두 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A사는 공정위 조사에서 가격 인하, 유지 등과 관련된 본사 간 합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이 객관적 정황과 증거를 바탕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본 본사 핵심 임원까지 직접 소환해 조사한 후 약식이 아닌 정식 기소하는 등 엄정 처리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제 카르텔에 대한 선례를 만들었다"며 "베어링은 여러 제품에 두루 활용되는 핵심 부품으로서 다른 산업에 미치는 연계 효과가 매우 크므로 이번 수사를 통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형 베어링 가격 담합 개요도. 사진/서울중앙지검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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