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황정민은 자신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물으면 "그냥 얼굴 빨갛고 만만한 것"이라고 민망한 듯 툭 던져 놓는 사람이다.
황정민만의 이런 소탈한 매력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발현된다. <너는 내 운명>이나 <국제시장>에서는 선한 남자의 수더분함으로, <신세계>의 정청이나 <부당거래>의 최철기 등 소위 '나쁜 놈'을 연기할 때는 이면의 진한 페이소스로 무장한 채 관객 앞에 선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모든 인물에게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이번 신작영화 <베테랑>에서는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라는 착한 가면을 썼다. 서도철 역을 통해 황정민만이 갖고 있는 푸근한 미소는 극대화된다. 그러면서도 문득 주머니 속에 숨겨둔 날카로운 칼처럼 형사의 집요함을 표출해내기도 한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우리 영화에는 황정민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형사 역할이라도 황정민이 하면 다른 느낌의 형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의미로 전한 말이다. 다섯 번째 형사 역할로 관객과 마주하게 된 황정민을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황정민은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 역할로 등장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베테랑>은 마치 두 마리 표범이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내달린다. 이처럼 단순한 구도 속에서 황정민은 선한 역인 서도철로 등장한다. 색이 진하고 강했던 기존 황정민의 역할들과 비교하자면, 이번 서도철은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느낌이 강하다.
연기에 관해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황정민이 왜 뻔한 구도의 스토리와 평범한 인물인 서도철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했다.
황정민은 "단순한 걸 어떻게 하면 덜 단순하게 보여줄까를 생각했다"고 답했다. 단순히 직선코스만 달리는데 그것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도 같은, 직선이지만 곡선처럼 보이는 영화를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에 물론 예술성이 가미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이다. 관객의 구미에 맞게 움직여줘야 하는 게 우리 대중예술인의 역할"이라며 "누군가는 이 작업을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관객이 좋아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관객이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관객을 먼저 고려하는 배우 황정민은 캐릭터를 연구하는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끊임없는 분석과 이해를 들었다. 인물을 구축할 때 특히 그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다각도로 고민한다고 했다. 한가지 색깔만 갖고 있으면 인물이 재미없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 알고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사실 나쁜 사람은 없다는 걸 알게 돼죠. 사람을 대하듯 캐릭터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분석하는 편입니다. 내가 이 사람을 먼저 이해해야 연기를 했을 때도 소통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면 입체적인 인물이 나오고, 또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황정민의 차기작은 <히말라야>다. 이 작품에서 그는 엄홍길 대장을 연기한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산악대장이 탄생할 것임에 틀림없다. 황정민이 연구하고 발굴해낸 엄홍길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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