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지난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제’를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안보법제는 기존의 10개 법률을 묶은 ‘평화안전 법제정비 법안’과 외국군대 지원차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게 한 국제평화지원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화안전 법제정비 법안은 무력공격사태법, 중요영향사태법, 자위대법, 미군 등 행동 관련 조치법, 특정공공시설이용법, 해상수송규제법, 포로대우법, 선박검사활동법, 국가안보회의 설치법, PKO협력법을 개정한 것이다.
안보법제에 따르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세계 어디에서나 미군 외에도 군사지원이 가능해진다. 자위대법은 유사시 무기사용 규제를 완화했다. 국제평화지원법은 일본의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미국이나 유엔이 요청하면 탄약 제공이나 전투기 급유를 가능하게 한다. 중요영향사태법은 한술 더 떠서 일본 정부의 판단만으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게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6월21일 사석에서 나온 ‘실언’을 통해 안보법제의 목적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드는 것”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 목적이 중의원을 통과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분쟁에 대비하는 일본은 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해 왔다. 미국은 반대급부로 일본의 안보 분담을 요구했다. 양자간 이해는 지난 4월말 미·일 정상회담과 ‘2+2’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교환되었다.
미·일 양국이 합의한 ‘신 가이드라인’은 미일동맹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극동지역의 평화와 안전, 일본 방위를 목적으로 한 미일동맹은 이제 세계 어디서나 활동 가능한 글로벌 군사동맹으로 바뀌었다. 일본 자위대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공동작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재난구호와 인도지원, 해적퇴치만 가능했던 자위대는 이제 전투 현장만 아니라면 언제나 어느 국가에서나 후방지원이 가능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필요한 ‘존립 위기’를 판단하는 것은 일본 정부 단독으로 가능하다. 자의적인 결정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이 분쟁 중인 우방국가에 탄약 보급이나 병력 수송을 하면 분쟁 상대국에 의해 적대국으로 간주된다. 자위대는 물론 일본 국민이 테러 위협에 노출된다. 실제로 지난 1월 아베 총리가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2억달러 지원을 언급했다가 일본인 인질 2명이 IS에 참수당했다.
미군 주도의 군사 행동에 말려들기를 꺼려하는 것은 어느 동맹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한미동맹도 북한의 군사도발과 한반도 내 분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은 일본이 나서서 적극 추진한 것이 특징이다. 주변지역이 아닌 세계 어디서나 공동작전을 추진할 수 있다. 신무기 공동 개발과 방위장비 수출도 포함된다. 일본은 호주에 잠수함 기술을 이전 중이다. 지난 11일에는 자위대가 미국과 호주의 공동 군사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이 긴장 유발자로 나서고 있다. 사실 신 가이드라인을 합의할 때 미국은 센카쿠 분쟁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신 가이드라인은 도서분쟁시 자위대가 전투 주체이며 미군은 지원 역할로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중·일 분쟁 개입을 분명 꺼리고 있다. 결국 일본은 얻은 것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안보 부담만 떠안은 셈이다.
아베 정권의 안보법제 강행 처리 당시 야당인 민주당과 일본유신회, 공산당은 표결에 불참했다. 일본의 헌법학자 90%가 안보법제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도쿄와 나고야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아베 정권과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144개 지방의회도 안보법제에 반대하고 나섰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물론 우익 만화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까지 정권을 비난하고 있다.
최근 <아사히신문>의 설문조사 결과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9%였고,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42%였다. 안보법제 찬성은 26%에 그친 반면 반대는 56%로 2배 이상 많았다. 작년 총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개헌 찬성 비율은 84%에 달했지만 일반 유권자는 33%에 불과했다. 정치인들과 국민들 사이의 괴리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전후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평화헌법을 사문화시키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고 있다. 일본은 물론 동북아 긴장을 부채질하는 아베 정권의 행태가 걱정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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