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대로된 안전검사 없이 시간에 쫓겨 특정 원료를 규제한 탓에 국내 색조화장품 업계의 매니큐어 생산이 사실상 중단됐다. 화장품 업계의 상당한 금전적 손실이 예상되지만 식약처는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물티슈 안전성 논란 이후 물티슈를 화장품으로 관리하면서 모든 화장품에 자일렌의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고시'를 지난 10일 공고했다.
이에 따라 모든 화장품에 자일렌 20ppm(0.002%)을 초과해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자일렌은 색조 화장품에 주로 쓰이는 성분이며 특히 매니큐어의 경우 이미 원료 용매 자체에 20ppm 이상의 자일렌 성분이 함유돼 있어 식약처의 규정대로라면 사실상 제조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식약처의 일방적인 화장품 원료 규제에 상당수의 국내 매니큐어 제품 생산이 중단됐다. 식약처는 화장품 원료에 대한 위해평가가 아직 진행중인 상태에서 물티슈에 적용할 수치를 그대로 화장품에 적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따라 개정고시가 발표된 지난 10일부로 국내 화장품 제조업계는 대부분 매니큐어 제품 생산라인 가동을 멈춘 상태다. 또 가을철 성수기를 앞두고 신제품 출시일정 등에 일부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같은 규제는 식약처가 화장품 원료에 대한 위해평가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티슈의 화장품 분류 전환일에 쫓겨 물티슈에 적용할 수치를 화장품에 그대로 갖다 붙이면서 나타난 일종의 탁생행정의 폐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원료업체들도 식약처 기준에 맞출 바에는 차라리 거래를 끊자는 분위기"라며 "식약처의 행정 편의주의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자일렌 함량 20ppm에 대한 규제는 물티슈 규정을 그대로 화장품에 적용한 것이 맞다"며 "아직 관련제품에 대한 위해평가가 진행 중인 상태지만 물티슈의 화장품 분류일에 맞추느라 개정을 서두른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아직 위해평가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평가 결과에 따라 기준 확대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기준을 완화할 수도 있다"고 뒤늦게 규정 재개정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업계는 위해평가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식약처의 발표만을 마냥 기다려야 해 상당 규모의 금전적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억울한 상황이지만 식약처가 규제기관인 탓에 대놓고 불만을 표할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또 이 같은 규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소규모 네일숍 등 골목상권의 소상공인에까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협회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위해평가를 진행한 후 그 결과에 따라 관련 규정을 개정해달라고 식약처에 수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절차를 무시한 채 물티슈 분류일에 쫓겨 일방적으로 진행한 식약처의 탁상행정에 업계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성수 기자 ohmytru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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