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났다.” 한숨을 쉬며 주민은 말했다. 2월 6일 오후 2시,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은 이미 찢겨있었다. 추위를 막아준 내벽은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채 바닥을 뒹굴었고, 건물을 지지했을 붉은 쇠막대는 중간중간 끊어져 허공에 떠 있었다. 찢긴 건물 아래, 흩어진 잔해 위에 주민들은 그나마 쓸 수 있는 물건을 하나씩 밖으로 꺼냈다. 철거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2층의 화분, 컴퓨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경과 대조적으로 지나치게 평온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강남구청이 철거를 시도한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사진=바람아시아)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구룡마을로 가는 길, 법원의 철거 정지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다. 빨리 사진만 찍고 집에 가자. 역에서 나와 걸을 때만 해도 주린 배를 채울 점심 메뉴를 걱정했다.
마을 앞 건널목, 외제 차가 도로를 내달렸고 날씨는 쌀쌀했다. 두 손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뚜벅뚜벅 걷다가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을 발견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장면이, 별거 아니라 여겼던 사실이 갑작스럽게 현실로 다가왔다. 더는 건물이라 불리지 못할, 복구할 수 없는 그것을 앞에 두고 할 말을 잃었다. 몸을 오들오들 떨게 한 추위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점심 메뉴도 까맣게 잊었다.
◇강남구청이 철거를 시도한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사진=바람아시아)
기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소연 같은 설명을 하던 주민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이 많은 듯 대화 중 끊임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개-새끼들!”
몇몇 주민들은 원망 가득한 울분을 터뜨렸다. 그 원망이 별생각 없이 구룡마을을 찾은, 그동안 무관심한 나를 향한 것 같았다. 죄인 마냥, 차마 다가서지도 못하고 건물 잔해 주변을 서성거렸다. 무거운 분위기가 추위를 짓누른 가운데, 생기를 잃은 사람들은 그나마 쓸 수 있는 물건을 찾아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강남구청이 철거를 시도한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사진=바람아시아)
“어이없어 말이 안 나오지요?” 멍하니, 서성거리는 내게 한 할머니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한 손에는 파란 비닐 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건물 잔해 속 파묻힌 옷가지를 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익숙한 것일까, 건물 잔해를 털어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무척 담담했다. 갑자기 그 모습이 슬퍼, 식사는 하셨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지요. 그래야 살 수 있지요.”
◇구룡마을 철거 장면(사진=KBS뉴스 캡쳐)
2월 6일 아침 7시 30분 아직 해가 뜨기 전, 강남구청 공무원 300명과 용역 50명은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 앞에 모였다. 주민 200명은 건물 안에서 스크럼을 짜며 버텼지만, 1시간도 되지 못해 모두 밖으로 끌려 나왔다. 이윽고 시작된 철거는 1시간 20분 동안 계속되다 오전 10시가 넘어 중단되었다. 앞으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으로 2월 13일까지 구룡마을에 굴착기가 들어올 일은 없다. 그러나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주민자치회관은 더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태다.
강남구청의 기습적인 행정 처리는 2월 6일 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12일, 강남구청은 구룡마을의 무료급식소와 교회를 철거했다.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시간, 강남구청은 마치 도둑질하듯 기습적으로 철거를 강행했다. 새벽 기도를 올리던 사람들은 15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무료급식소가 철거되는 것을 두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주민들이 담근 올해 김장김치는 물론, 무료로 급식하기 위한 각종 재료가 건물 잔해에 파묻혀 전부 버려졌다. 철거 이유는 농지를 종교 부지로 활용하였다는 것. 농산물 직거래 점포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월 6일 강행한 행정대집행 근거와 유사하다. 순간 분개하여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한숨만 내쉬었다. “무허가 판자촌이니까. 어쩔 수 없지.”
◇구룡마을 주민 인터뷰(자료=KBS뉴스 캡쳐)
주민들은 다시는 그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싶지 않았다. 주민자치회관은 구룡마을 주민들이 가진 소중한, 없는 이들이 가진 유일한 합법적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주민자치회관은 작년 12월 31일까지는 합법건축물이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 중 일부는 이틀 전부터 주민자치회관에 모여 같이 잠을 잤다. 적어도 법원의 결정이 날 때까지만이라도 어떻게든 건물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성실했다. 2월 6일 이른 아침,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주민자치회관을 무리하게 철거했다. “왜 이렇게 급하게 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차분히 물건을 주워담던 할머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 할머니는 구룡마을 주민과 토지주 사이를 중재해 온 주식회사 ‘구모’가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이 6일 오전에 나온다는 사실을 강남구청이 모르지 않을 거라 했다.
◇강남구청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에 보낸 행정대집행 영장(사진=바람아시아)
1980년대 도심개발로 살 곳을 잃은 서민들이 모인 구룡마을은 기본적인 생활권조차 보장되지 않아 개발이 시급하다. 2012년 서울시와 강남구의 토지 보상방식의 차이로 지지부진하던 개발은 2014년 12월, 서울시가 강남구의 수용·사용방식을 전면 받아들이면서 탄력을 받았다. 서울시가 2년 넘도록 고수한 토지 보상방식을 내려놓은 것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구룡마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평화적, 민주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보상 문제에 폭력적인 공권력을 동원했다. 1월 12일과 2월 6일, 주민들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구심점을 앗아가는 강남구청의 행정 방식은 주민보호 너머 다른 목적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월 16일 뉴시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한 답변이 기억난다. “그래서 저는 과거 수십 년간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강남구의 어두운 그늘을 지우겠다고 결심하고 줄곧 쉼 없이 달려왔다.” 그의 머릿속 어두운 그늘은 구룡마을 주민일까. 위험한 망상을 들었다가 바로 내려놓았다. 앞으로 어떤 어두운 그늘이 2월 6일에 구룡마을 주민들이 맞닥뜨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지 걱정스러웠다.
집에 오는 길, 차가운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지하철은 따스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오늘 구룡마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빠르게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할머니는 무너진 건물 아래서 잔해를 털고 있을 거다. 차갑게 손이 얼어붙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폐허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을 거다. 담담해서, 보는 이를 더욱 슬프게 하는 그 몸짓을 유지하면서.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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